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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그 신발 좀... 벗으면 안 될까요?

by 정숙진

"그냥 들어와도 돼, 걱정 마."


문을 열어준 샤론이 당황하며 말했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벗으려는 나를 만류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 리모델링을 끝낸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다.


인테리어 화보에 실어도 될 듯 솜털처럼 부드럽고 깨끗한 베이지색 카펫이 먼저 눈에 띄었다. 신발을 신고 다닌다는 사실은 알지만, 이토록 깨끗한 바닥은 처음이라 그대로 들어가려니 죄책감이 들었다.


현관에서부터 복도, 부엌, 거실까지 전부 베이지색 물결이었다.


사실, 카펫이면 어떻고 장판이나 목재 바닥이면 어떠랴. 남의 집에 발을 디디는 순간 다들 조심스러워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호화 대저택이든 허물어져가는 판잣집이든 누구나 실내에 들어서면 신발부터 벗는 걸 예의로 아는 한국에서 살다가 영국에 온 후 아직도 내가 눈치를 보는 문화가 신발이다.


서양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한 번씩 나오곤 한다.



shoes on.png smartsleepingtips.com



↑ '신발을 신고 잠을 자도 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 실린 사진이다.


밖에서 신던 신발을 신은 채 실내에서 돌아다니는 정도는, 그네 문화가 그렇다 하니 봐준다 치더라도, 침대까지 올라가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잠들어버리다니 얼마나 경악할 일인가.


세수와 양치, 잠옷으로 갈아입기 등 취침 전 으레 해야 할 행위는 모두 건너뛰었을 터이고 이불마저 제대로 안 덮고 취침 자세도 불편하지 않겠나. 발에 꽉 끼는 신발과 옷차림은 혈액 순환에도 영향을 주니 최악의 취침 상태다.


건강과 침대 위생에까지 나쁘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음에도, 이를 전문가의 의견까지 인용해 설명해야 하다니.


그런데, 잠시 생각을 돌려보자.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생활에 익숙하다면 침대에서라고 못 신을 이유도 없지 않을까? 스마트폰 없이는 한시도 지내기 힘든 현대인이 이를 침실로 가져가 잠드는 것처럼 말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늘면서 덩달아 불면증 환자수도 늘고 있다는 연구를 들먹이지 않아도, 취침 전 기기 사용이 수면에 끼치는 해악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으리라.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잠들기 전 스마트폰 화면의 유혹을 끊기는 힘들지 않은가.


서양인이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닌다 해서 모두가 침대에까지 끌고 가는 건 아니다. 실내에 들어서자마다 현관에다 신발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위 사진처럼 행동했다가는 누군가에게 잔소리 듣기 십상이다.


자기 집에서 뭘 신고 다니냐 혹은 안 신고 다니냐는 영국인도 명확한 답변을 못할 텐데, 더욱 곤란 한 건 외부 방문객이 왔을 때다.



"죄송하지만, 작업 규정상 신발을 벗을 수 없는데요."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인터넷 연결을 신청했을 때다.


서비스 설치를 위해 온 직원은,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신을 듯한 안전화 차림의 남성이었다. 더럽지는 않지만 꽤 오래 착용한 듯 낡아 보이는 신발이었다. 저걸 신고 사방을 돌아다니다 우리 집까지 들어온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다.


그래서, 다른 방문객에게 했던 것처럼, 신발 좀 벗어달라 정중하게 부탁했다. 여기에다, 우리 가족은 실내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 문화권에서 왔다며 양해도 구했는데, 이런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그가 작업에 쓰려고 들고 온 공구 상자가 그제야 눈에 띄었다.


DIY나 간단한 수리를 직접 하는 이라면 누구나 집에 하나쯤 보관하고 있을 법한 상자인데, 용도를 알 길 없는 각종 쇠붙이와 기기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런 금속 물체를 다루다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부상을 당할 일이다.


업무 도중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회사에서 직원의 복장과 신발까지 단속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나도 집에서 누군가 다치는 건 바라지 않으니, 괜한 부탁을 했다고 직원에게 오히려 사과를 했다.


이때 이후, 수리나 설치 등의 서비스를 위해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신발을 벗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런 식으로 가가호호 방문하며 일을 하는 이들은 직업적으로 훈련이 된 것인지 집에 들어설 때 입구에 깔린 매트에다 신발을 털면서 최대한 청결을 위해 노력함을 애써 보여주려 했다. 어떤 경우는 일회용 신발 커버를 착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문화는 사람의 행동뿐만 아니라 집 구조에도 영향을 준다.




Korean porch.png
British porch.png
@ pol1318.................................................rightmove.co.uk



현관 입구부터 다르다.


어느 쪽이 영국인지 또 어느 쪽이 한국인지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한국식 현관은, 신발을 벗은 뒤 거실이나 복도에 올라설 수 있도록 혹은 앉은 자세로 신발을 신기 편하도록 아래가 움푹 파인 형태다.


반면, 영국식 집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바닥의 높낮이 구분이 없다. 대문 입구에서 거실과 부엌으로 향하는 복도까지 대부분 같은 바닥재로 되어 있다. 입구에는 매트 한 장이 깔려 있고 그 옆으로 신발장이 놓여 있기도 있지만 바닥 자체는 전부 평면이다. 신발을 신은 채 곧바로 걸어 들어가기 편한 구조다.


1층만 평면인 건 아니다.



"어, 슬리퍼를 그대로 신고 나오네."


친척집에서 욕실을 이용하고 나왔더니 A가 내게 한 말이다.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어 멍해 있는데 모두의 시선이 내 발로 향했다. 나도 얼떨결에 아래를 쳐다봤더니 욕실에서 신었던 슬리퍼를 그대로 신은 상태였다.


이런...

영국에서 하던 행동을 무의식 중에 반복하다니.


전형적인 영국식 주택은, 1층에 부엌과 거실이 있고 이층에 침실과 욕실이 있는 형태다. 각 공간이 별도의 문이나 벽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바닥은 대부분 높낮이 구별이 없다. 앞서 나온 현관과 복도처럼 말이다.


이런 집에 살다 보니 욕실이라 해도 욕실화를 별도로 두지 않고 집에서 신는 실내화 차림으로 욕실에도 들어가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bath.jpeg rightmove.co.uk



반대쪽 통로에 카펫이 깔린 점 말고는 욕실 내부와 바깥 통로의 높낮이가 같음을 알 수 있다. 신고 있던 신발을 신고 그대로 욕실에 출입할 수 있는 구조다.



"욕실에서 씻다가 물이 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가능한 일이다.


위 사진만으로는 욕실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건 영국의 욕실 바닥에 배수구가 없다는 점이다. 오로지, 욕조와 세면대, 샤워 칸막이 내부에서만 물을 사용할 수 있다. 욕조에 물을 받던 도중 이를 깜빡했다가 물이 넘쳐 욕실 밖으로 흘러나오는 사고가 간혹 발생하는 이유다.



신발을 신고 다니는 문화는 수납공간에도 영향을 준다.


장시간 외출 후 신발을 벗어 정리해 두기 편하도록 신발장을 설치하는 건 한국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곳에 신발장을 두기도 한다.



@ Paul Ramsay



바로, 침대 밑 수납공간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침대 밑이나 곁에 두는 간이 신발장이 나온다고 하는데, 분명 자취방이나 기숙사 등 공간이 협소한 곳을 활용할 아이디어 상품이리라.


위 영상에서처럼, 서양에서도 작은 공간을 활용할 상품이라 하겠지만 그렇다고 방바닥에다 신발을 펼쳐놓고 신어보는 문화는 한국적 정서와 동떨어진다.


오히려, 침실 한편에 놓인 전신 거울 앞에서 자신의 머리 스타일과 옷매무새, 신발까지 전체적으로 확인하기 좋은 구조다.



"다른 사람한테 신발 벗으라 못하는 판에 에라 모르겠다, 우리도 신발 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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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한창 사교댄스를 배우던 때다.


춤의 특성상 남녀 모두 구두를 착용해야만 동작이 가능하기에 이런 차림으로 배웠는데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려니 집에서도 이렇게 신었다. 물론, 춤출 때만.


영국의 신발 문화 덕택에 바닥 위생 개념은 무뎌졌지만, 춤 연습은 맘껏 한 셈이다.


* 글에 언급된 이름은 물론 이니셜까지 모두 가명이며, 소개된 각 일화도 약간씩 각색되었습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Mathieu CHIRIC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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