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아동학대를 의심받았던 순간

by 정숙진

"XX이 어머니,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아들이 다니는 놀이방의 원장이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아들 때문에 신경이 쓰이던 시기이기도 해서 주춤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점심과 간식을 먹는 시간이 되면 아들은 자기 몫을 다 먹고도 모자라 더 달라고까지 해서 먹는다고 한다. 또래 친구들이 음식을 남기거나 투정을 부리는 것과 너무나 비교될 정도다.


"오늘 XX이가 밥과 간식까지 2인분이나 먹고 잘 놀았어요."


아들의 생활 기록표는 물론 아들을 하루 종일 돌봤던 직원의 증언도 늘 이런 내용이었다.


엄마인 나를 기쁘게 하려는 의도에서 꺼내는 말이겠지만, 아들의 먹성을 아는 나로서는 미안한 감도 들었다.


저녁에 아들을 데리러 가면 직원은 늘 'Ate all (다 먹었어요)'과 'Second helping (2인분)'이라는 말을 남발하며 아들의 일과를 요약했다.


"에잇 올, 세컨 헬핑!"


이건 마치 래퍼들의 외침같이 들리기도 했다.


어떤 때는 너무 많이 먹는 아기라고 놀리려는 의도가 아닐까 의심이 되다 못해, 나에게 식비를 추가로 내라는 건 아닐까 걱정도 하던 차다. 더 심각하게는, 아들이 다른 아이들 간식까지 뺏어 먹는다,라는 소리도 나오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다들 들떠 있는 시점에 나를 불러다 놓고 꼭 그런 말을 하려고?


평소에는 놀이방 건물 입구에서 벨을 누르면 직원이 내 얼굴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1~2분이나 지나야 문이 열리곤 했다. 이 때문에, 겨울로 접어든 최근 몇 주간 문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이날은 벨을 누른 지 1초도 안 되어 문이 즉각 열려 깜짝 놀랐다. 문을 열어 준 직원의 얼굴에는 예전의 상냥함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직원 뒤에 원장까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대체 무슨 일인가? 뭔가 심각한 일이라도 생겼나? 평소와 너무도 다른 모습에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내가 나타날 시간에 맞춰 그리고 CCTV로 나의 동향을 살피며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니까.


잠시 할 이야기가 있으니 같이 원장실로 가자고 했다. 얼마나 심각한 얘기를 하려는지 항상 열어두던 원장실 문까지 닫고서 말이다.


"에이, 우리 아들이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해도 그렇지, 그렇게 심각하게 나오면 어떡하냐고?"


속으로 이렇게 외치기는 했지만, 너무나 차갑게 대하는 직원과 원장의 태도도 그렇고 사무실로 들어가자는 말까지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아들의 먹성이 문제라고 해서 사람을 이렇게 쫄게 만드는 건 너무하지 않나? 등 여러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오가는데 원장의 입에서 전혀 뜻밖의 말이 나왔다.



"직원이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XX이 등과 엉덩이에서 멍 자국을 발견했는데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앗...

그것 때문이었어?

난 또 뭐라고.


당시 두 돌을 막 넘긴 아들의 척추 부위와 엉덩이에는 푸른색의 몽고반점이 크게 나 있었다. 유난히 짙은 색이라 할 수 있지만, 나 또한 유아기에 보였던 현상이라고 엄마에게서 들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생후 며칠 안 된 아들의 몸 구석구석을 손으로 꼼꼼히 만져가며 검진하던 영국인 의사도 ‘이 멍 자국처럼 생긴 것이 모반 (Birthmark) 맞아요?’라고 묻기만 했지, 문제 삼지는 않았기에.


한국에서라면 몽고반점을 금방 구별해 내겠지만, 아시아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몽고반점이 영국인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인종의 몸에도 유아기에 모반이 나타나는데, 푸른색의 몽고반점과 달리 주로 분홍색과 붉은색, 갈색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몽고반점을 멍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옆에서 꼼지락거리는 아들을 내 무릎에 올린 후 등과 엉덩이를 원장이 볼 수 있도록 내놓고 아무 말 없이 내 손으로 쓱쓱 문질러 보였다. 드러난 자국들이 모두 폭력의 흔적이라면 이 정도 자극에 어린아이가 가만있겠나 싶어서다. 아들은 엄마 무릎에만 있는 것이 갑갑한지 발버둥 칠 뿐 아무런 고통의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한결 여유로워진 자세로 원장에게 한국의 아기에게 나타나는 몽고반점 (Mongolian Spot)을 설명해 줬다. 놀이방 원장답게 유아기 신체에 관한 기본 상식은 있으니 몽고반점에 대해 들은 적은 있다고 한다. 이론으로만 들었지 직접 접한 건 처음이라고 한다. 아들의 경우 지나치게 짙은 색상과 넓은 부위 때문에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아들이 다니던 놀이방에는 중국-영국계 혼혈 아동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몽고반점이 생길만한 아이는 내 아들밖에 없었다. 아토피성 피부염까지 앓다 보니 피부 상태도 좋지 않은 데다 가려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할퀸 상처까지 더해졌다. 원장실의 밝은 조명 아래 드러난 아들의 등과 엉덩이는 온통 붉고 푸른색으로 덮여 있어, 내 눈에도 그날따라 유난히 맞은 흔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 이후 우리 가족이 이사를 가고 다른 동네에서 새 놀이방과 학교로 옮길 때마다 나는 습관적으로 아들의 몽고반점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아이를 맡아줄 담당자와의 첫인사에 아이의 엉덩이부터 드러내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다.



아들이 놀이방을 다니던 해, 영국에 있었던 일


아동 학대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시기다.


같은 해 8월에 드러난 아기 피터 사건 때문이다. 당시 생후 18개월인 피터가 생모와 계부에 의해 학대를 당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사건으로 영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내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건이라 가슴 아파했지만 몇 개월 뒤 이 사건은 내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이방 직원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다. 부모가 저지른 학대 사건이면서, 병원과 정부 관계자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다. 피터가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8개월여간 부모의 학대가 이어졌음에도 그 흔적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이를 방관했다고 볼 수밖에 없어서다.


영국에는 놀이방과 학교, 병원 등 아동을 수용하는 기관에 등록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에는 ‘학대에 의한 피해 흔적이 아동에게 드러날 경우 당국에 신고해도 됩니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여기에 보호자가 네/아니요 중 하나로 답변을 해야 한다.


물론, 이 항목에 ‘아니요’라는 답변을 했다고 해서 학대당하는 아이를 내버려 두는 기관은 없을 것이다. '아이를 학대한 흔적이 발견되면 즉각 신고하겠다'라고 부모에게 내리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아이의 몸에 몽고반점이나 출생 시 생긴 특이한 흔적이 있다면 미리 주변에 밝히자. 해외에 산다면 '나 학대 부모 아니에요'라며 먼저 나설 필요도 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Volodymyr Hryshchenk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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