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면서 친해진 식료품

by 정숙진

"어, 커피 맛이 왜 이렇지?"


이런...

남편이 그새 커피 포트에 물을 넣어 끓였나 보다.


뚜껑을 열어둔 상태라 근처만 가도 냄새가 진동할 텐데...

물이 펄펄 끓는 동안 주변에 수증기까지 퍼졌을 텐데...

그러고도 냄새를 못 맡고 그 물을 마시기까지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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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포트에 식초를 부어둔 상태였다.


유리잔에 받아 두면 바닥에 하얀 결정체가 보일 정도로 영국의 수돗물에는 석회 성분이 많다. 인체에 무해하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대로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정수 필터를 거쳐도 석회 성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데, 이를 어떻게 제거하나 고민하던 중 식초의 효능을 발견한 후부터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석회 성분이 많은 환경에서 커피 포트를 반복 사용하다 보면 바닥에 석회질이 쌓여 뿌연 얼룩이 생긴다. 이 상태로 계속 사용하면 석회질이 알갱이로 벗겨져 물을 따를 때마다 찌꺼기가 나오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수돗물을 곧바로 받아 마시는 이도 많지만, 이런 이물질을 피하려 생수를 사 먹는 이도 있다. 나도 그런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물 먹는 하마'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물 소비량이 많은 내게 걸맞은 양의 생수를 꾸준히 구매하고 배달시키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었다. 매번 배출될 플라스틱 쓰레기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집에서는 수돗물을 받아두었다가 윗물만 따라내어 식수로 이용하는 한편, 정기적으로 식초를 활용하기도 한다.


사실, 영국에서는 커피 포트뿐만 아니라 주방과 욕실 곳곳까지 물이 닿는 곳이면 늘 석회 자국이 따라다닌다. 세탁을 마친 짙은 색 옷에는 하얀 얼룩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식초를 섬유 유연제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석회를 제거해 주는 제품이 시중에 판매되긴 하는데 이를 써보니 효과는 있지만, 화학 성분이 남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꺼림칙했다. 간편하게 석회를 제거하려다 오히려 강박적으로 물로 헹궈내는 결과만 발생했다.


이런 내 고민을 식초가 해결해 줬다. 식초를 커피 포트에 부은 뒤 10여 분만 지나도 석회 자국은 금방 사라진다. 시판되는 석회 제거제보다 저렴한 데다 한 차례 물로만 헹궈내면 잔류 성분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다.


물론, 잊으면 안 될 사항이 있다.


그토록 강렬한 신 냄새가 주방에 퍼진 것도 모르고 식초물을 마시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식초 세척 중'임을 반드시 경고하는 일이다.



식초


글의 제목처럼 내가 영국에 살면서 친해진 식료품 하면 식초를 빼놓을 수 없다. 식료품이긴 한데 그리고 실제 요리에도 자주 활용하지만, 나의 경우 엄밀히 말해 식료품이 아닌 청소 재료로 더 친해진 셈이다. 커피 포트 청소는 물론 집안 곳곳을 소독할 때도 또 빨래할 때도 사용하니 말이다.



감자


영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감자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굳이 찾지 않던 것이, 영국에 살면서 확고하게 싫어하는 음식으로 1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싫어하는 음식이라면서, 왜 이 자리에 꼽았냐고? 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감자를 싫어한 이유는 영국에서 너무 흔하다 보니 거부감이 생겨서다. 영국인은 밥으로도 술안주로도 또 간식으로도 감자를 먹는다. 영국의 대표 음식 하면 다들 피시 앤 칩스를 떠올리지 않는가. 그런데, 영국에서 감자가 들어가는 요리는, 생각보다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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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텁게 썬 감자를 튀겨 만든 칩스는 영국의 식당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피시 앤 칩스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테이크와 버거 심지어 카레, 샌드위치를 시켜도 감자튀김이 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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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리 앤 칩스... 샌드위치 앤 칩스...


대식가인 남편과 아들이 거든다 해도 가족 세 명이 시킨 메인 메뉴에 딸려오는 감자를 다 먹어치우지 못할 정도로 양이 많기에, 가능하다면, 나는 감자 대신 샐러드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10년 넘게 싫어하던 감자와 어떻게 친하게 되었을까?


우선, 우리 집 남자 둘 다 감자를 좋아해서다. 실험 정신이 강한 엄마의 요리를 먹고 자란 아들의 경우, 사실상 싫어하는 음식을 꼽기 힘들 정도니까.


영국에서 감자가 유난히 저렴하다는 점에서도 외면하기 힘든 식재료다. 그래서, 처음에는 감자를 좋아하는 두 남자를 위해 식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나도 감자 맛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영국에서 흔하게 먹는 방식으로 튀기는 요리가 아닌 생선이나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조림 형태로 말이다.



소금


소금은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친근한 식료품이라, 특별히 언급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 또 음식에 간을 하기 위해 평소 대량으로 구비해 두니까.


영국의 장바구니 문화와 비교해 우리 가정에서 소금을 많이 쓴다는 의미에서 이 자리에 언급해 보았다.


pexels-kaboompics-com-6401.jpg Photo by Kaboompics. com from Pexels



슈퍼마켓에서의 소비자 구매 기록을 분석하여 흥미로운 연구를 실시한 기관이 있다.


식료품 구매 품목에서 소금이 차지하는 비율과 해당 소비자의 교육, 소득, 건강 수준과의 연관성을 분석한 것이다. 정확한 비교 항목과 연구 방향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데, 소금 구매 비율이 높을수록 교육이나 소득, 건강 수준이 낮다는 다소 황당한 결론이었던 것 같다.


영국에서 누군가 내 장바구니 영수증을 이런 연구 자료로 활용했다가는, 교육 수준이고 뭐고,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구매하는 소금 양에 대한 경고부터 하지 않을까 싶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Daria Strateg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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