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요, 셔어트 어디 있어요?

by 정숙진

아들이 교복 셔츠를 찾아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옷장에 걸린 셔츠를 매일 아침마다 직접 꺼내 입는데, 내가 주말에 세탁을 하는 바람에 옷장 대신 건조대에 걸어 두었더니 아들이 못 찾은 것이다.


다 마른 셔츠를 가져다주려던 찰나, 아들의 방문 앞에서 일단 심호흡부터 하고 목청도 가다듬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월요일 아침부터 초딩 아들에게 잔소리 들을 일이 뻔해서다.



"아들, 셔어트 여기 있다."


원어민 수준으로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해외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대부분 어린 자녀에게 발음을 지적당한다. 사실, 평소 언어 실력과도 무관하다.


가장 흔하게 지적당하는 발음이 외래어다. 무심코 한국에서 쓰던 대로 말했을 뿐인데, 학교에서 듣는 발음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는 어른의 발음을 지적한다.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내용을 써먹는 거겠지만 듣는 어른은 기분 나쁘다.


셔츠가 대표적인 단어다. 한국인이라면 셔츠를 셔츠라고 하지 뭐라고 하겠나.


Shirt [ ʃɜːt ]


Shirt의 영어 발음은 셔츠가 아니라 셔트다. 더 정확히는 '셔어트'라 할 수 있다.


셔츠라는 말은 복수형인 Shirts에서 왔을 텐데, 왜 단수형 Shirt의 한국어로 쓰이게 된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어쨌건, 셔어트를 셔트, 셔츠, 서츠라 해도 웬만한 사람은 다 알아듣더만, 아들은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자매품 티이셔어트도 있다.


T-shirt [ˈtiːʃɜːt ]



"엄마요, 치즈가 아니라 치이즈인데요."

Cheese [ tʃiːz ]



토종 한국인이 해외에서 자주 틀리는 영어 발음 중에는 치즈를 빼놓을 수 없다.


치즈는 이제 한국어 아닌가? 이를 대체할 순수 한국어 단어가 없으니 수많은 한국인이 오랜 세월 동안 당당히 치즈라 발음해 오지 않았나. 그런 배경을 모르는 아들은 내 발음을 틀렸다고만 지적한다.


부모들이여, 어쩔 수 없다.


해외에서 생활하거나 학교, 학원 등에서 원어민 교사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자녀에게 놀림당하기 싫다면 틀리기 쉬운 영어 단어의 발음을 익혀둘 수밖에.



셔츠 ... Shirt ... [ ʃɜːt ] ... 셔어트

티셔츠 ... T-shirt ... [ˈtiːʃɜːt ] ... 티이셔어트

치즈 ... Cheese ... [ tʃiːz ] ... 치이즈

꽃병 ... Vase ... [ vɑːz ] ... 바아즈 *

바람자루 ... Windsock ... [ wɪndsɒk ] ... 윈드속 **


* 영국식 발음

** 한국에는 생소하지만, 영국에는 유치원생도 알 정도로 흔하게 쓰는 단어


위 단어처럼 한글 표기대로 읽기만 해도 거의 원음에 가깝게 구사할 수 있는 단어는 그나마 다행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외래어 중 알파벳 F가 들어가는 단어는 정확한 한글 표기가 불가능하므로 아무리 노력해도 발음을 지적당할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


패션 ... Fasion ... [ˈfæʃn ] ... 패션

패스트푸드 ... Fast-food ... [ fɑːstfú:d ] ... 파스트푸드 *

픽션 ... Fiction ... [ˈfɪkʃn ] ... 픽

필름 ... Film ... [ fɪlm ] ... 필름


* 영국식 발음 (이것도 영국에 사는 한국인 부모를 힘들게 하는 요소다)


영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부모의 영어 발음을 지적할 정도라고 해서 아들의 영어가 완벽한 건 아니다. 주로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배운 단어에만 한정되며 이 또한 쉬운 단어 위주다.



"엄마요, 오늘 학교에서 노래 배울 때 선생님이 칠판에 리크리스 보여줬다요."


아들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 나로서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합창반 활동을 하는 아들이 이날 있었던 수업 내용을 내게 설명하는 중이었다.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한국어로 옮기지 못하는 단어가 나오면 아들은 학교에서 들은 단어 그대로 대화에 끼워 넣었다. 실제 하려던 말은 '노랫말'이라는 뜻의 'Lyrics'인데 정확한 발음을 몰랐던 아들이 생각나는 대로 내뱉은 것이다.


드디어, 나에게도 아들의 발음을 지적하는 기회가 생겼구나.


"자... 아들... 잘 듣고 따라 해. 리크리스가 아니라 리릭스."


노랫말 ... Lyrics ... [ lɪrɪks ] ... 리릭스



커버 이미지: Photo by Nimble Mad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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