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었어? 그 선생님 말이야

영국인의 결혼과 출산

by 정숙진

“오닐 선생님이 임신하셨답니다. 모두 축하해 주세요.”


매주 발행되는 아들의 초등학교 소식지에 실린 글이다.


저학년일 때는 아들의 가방 속에 선생님이 직접 넣어주시더니, 학년이 높아지면서 교실 한편에 쌓아둔 것을 학생이 직접 챙겨가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종이가 아닌 온라인 소식지로 바뀌면서 학부모 이메일로 발송되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전달 방식은 달라지고 도중에 아이의 학교도 두 차례나 옮겼지만 소식지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어느 학교를 가든 어떤 형태로 소식을 전하든 다음 주 급식 메뉴와 학교 일정, 행사 보고와 사진, 각종 수상자 명단, 교직원 인사 등이 지면을 대부분 차지하니까.


이날 특히 눈에 띄었던 기사는 바로 앞서 나온 내용이었다.


전교생이 300명 정도로 작은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전하는 자리에 교사의 임신은 제법 큰 흥밋거리다. 학교가 아니더라도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누군가의 임신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소식이니까.


영국의 출산 휴가는 최대 1년까지이므로 교사의 출산으로 인한 교육 공백은 클 수밖에 없다. 대체 교사를 사전에 뽑아야 하고 해당 교사가 담당하던 학급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 학부모에게 알려야 하므로, 교사의 임신과 출산은 소식지에 늘 소개된다.


그럼에도, 언제든 누군가는 임신을 하고 새 생명이 태어나듯 평범한 소식일 뿐인데, 이날 임신 소식이 내게 더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따로 있다.


오닐 선생님은 Mrs가 아닌 Miss O'Neill (가명)이기 때문이다. 즉, 당시 결혼을 하지 않은 분이었다.


결혼도 안 한 교사가 임신을 했다고?

그것도 학교 소식지에 당당히 소개되고 학부모더러 축하를 바란다고?


영국 통계청(ONS) 자료에 따르면, 1986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출생한 신생아 중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비율이 78.6%였다. 이 비율은 그 후로 꾸준히 떨어져 2021년에는 48.7%가 되었다. 신생아의 절반 이상이 결혼하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는 셈이다. 부모가 결혼하지 않고 동거 중이거나 별거 중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아이의 아버지가 등록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미혼모'라는 뜻의 'Unmarried mother'라는 영어 단어가 존재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을 낳고 기른 부모마저 상당수가 결혼이라는 제도권 밖에서 태어나는 상황에 결혼 여부를 구분할 필요가 있겠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뜻에서, 'Single mother'만 있을 뿐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흔하게 쓰는 단어인 '싱글맘'. 어린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겪은 이, 동거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이, 배우자와 이혼/사별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이까지 모두가 싱글맘이다.


내가 만난 영국인 중에는 오닐 선생님 말고도 미혼 부모가 더러 있었다.


아들과 등교하는 길에 자주 마주치던 모녀는 엄마가 교직원이요, 딸은 학생으로 같은 학교 소속인데 엄마와 딸의 성(姓)이 달랐다. 즉, 영국 기준에서 보면 결혼하지 않은 가정에 해당한다. 자녀가 넷이 되어서야 결혼식을 올린 선생님도 있고, 애가 열 살이 될 무렵 애 아빠와 결혼하는 등 교직원과 학부모 중에도 미혼 부모가 제법 있었다.



"파트너라고요?"


경찰서에 두 명의 중년 남성이 들어섰다. 유치장에 갇힌 아들을 찾아온 아버지와 그의 친구다.


부모에게 통보도 없이 미성년자를 감금한 경찰의 실수를, 아버지가 지적하고 이에 대해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때, 옆에 있던 아버지 친구까지 한마디 거들려 하자 경찰이 제지를 하며 한 마디 던졌다.


경찰: 당신은 누구요?

아버지 친구: 나는 이 사람 파트너요.

경찰: (말없이 웃음을 짓는다)

아버지 친구: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이며) 비즈니스 파트너란 말이요.


오래된 시트콤의 한 장면이다.


경찰이 왜 웃었냐고?


영어권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파트너'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업상의 파트너도 있고 운동이나 춤, 게임에 필요한 파트너도 있지만, 배경 설명 없이 파트너라고만 하면 연인이나 동거인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 버린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달랐던 당시 드라마 속 사회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앞뒤 설명도 없이 남자들끼리 ‘파트너’라 했을 때 웃을 만도 하다.


결혼한 부부와 다를 바 없이 한 집에 살며 자녀까지 낳아 키운다 하더라도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은 반려자를, 영국에서는 파트너라 소개한다.



영국의 유명인들 중, 미혼모와 미혼부는 누가 있을까?


-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


2021년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현장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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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국 정상들의 배우자가 모인 자리에 귀여운 꼬마 하나가 달려왔다.


이 아이는 당시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과 그의 부인 캐리 시먼즈 사이에 태어난 윌프레드 존슨이다. 이들 부부는 같은 해 5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로써 영국에서 2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임기 중 결혼을 한 총리라는 기록도 나왔다.



- 아델 (가수) -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 아델과 자선사업가 사이먼 코넥키는 2012년에 아들을 출산했고 2017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adele-simon-8fc1.jpg Getty Images


사생활을 잘 공개하지 않는 아델의 평소 습관대로 두 사람의 첫 만남이나 출산, 결혼 준비, 이별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결혼식 또한 두 사람의 LA 자택에서 비밀리에 진행되어 결혼사진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 가이 리치 (영화감독) -


영화 <알라딘>과 <셜록 홈즈>, <스내치> 등의 감독으로 유명한 가이 리치와 미국 가수 마돈나가 결혼하던 2000년, 둘 사이에 4개월 된 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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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리치와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은 사진 속 아기는 결혼 전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로코코이고 오른쪽 소녀는 마돈나와 전 남자 친구 사이에서 태어난 딸, 루데스 레온 (현 미국 가수)이다.



- 캐서린 제타 존스 (영화배우) -


웨일스 출신 영화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와 미국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라스가 2000년 12월에 결혼할 때도 이미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딜런 마이클 더글라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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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아담스 (축구 선수와 가수) -


1999년, 세기의 결혼이라 불리며 수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아담스의 결혼.


celebrity-wedding-david-victoria-beckham_450x564.gif Wedding Honeymoons Magazine



지금은 구단주와 의류 모델로 더 유명하지만 당시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데이비드 베컴과 베컴 못지않게 유명세를 자랑하던 스파이스 걸스 출신의 가수 빅토리아 아담스가 결혼하던 날, 아들이 결혼반지를 들고 나타났다. 당시 4개월밖에 안 된 브루클린이 어떻게 걸어 들어왔을지 궁금하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kids&me German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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