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은 <세계모유수유주간>
교육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불안해지더니 차츰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신호다. 모유수유를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그 통증.
교육 도중 젖 짜러 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입사 첫날에 말이다.
나는 영국에서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던 중 아들이 갓 백일을 넘길 무렵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취업 포털 사이트에 올려두었던 내 이력서를 업체가 보고 지원해보지 않겠냐 연락한 것이다.
연락을 받는 순간, 이 회사로 출퇴근하며 일하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집에서 일하며 육아를 하는 편이 수지가 맞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채용 계획이 없는 회사에 지원서를 내는 일이나, 취업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 취업 문의를 하는 일이나, 당사자는 심드렁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일단 지원이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별 기대도 안 하고 지원서를 냈더니, 며칠 뒤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 날짜를 잡았다.
면접이 끝날 무렵, 곧바로 근무할 수 있겠냐 나오길래 일단 2주의 시간을 달라 요청했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해서다.
다국적 기업의 광고를 모니터링하는 이 회사는 다양한 외국어 구사자를 필요로 하는데 당시 한국어 담당자를 절실하게 구하고 있었다. 내가 그다지 까다롭지 않게 서류 심사와 면접을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다. 원하기만 하면 당장 내일부터 근무해도 된다고 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이렇게 다급하게 나오니 점점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 사정부터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어디에 맡길까?
모유수유를 당장 끊어야 하나? 그것도 2주 만에 가능할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분유로 갈아타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이전 보다 득이 될까?
솔직히 말하면, 2주 동안 고민만 하다 입사를 포기할 것 같다는 불길함부터 앞섰다.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하겠지만, 나의 경우, 애를 잠시라도 맡길만한 가족도 친척도 경험담도 없는 해외에 살고 있으니 더 막막했다.
남편이 도와줄 것 같지도 않았다. 불규칙한 일정에 맞추어 학교와 집을 오가는 사람으로, 주말에만 육아와 집안일을 거드는 정도였다. 지금껏 주중에는 내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는 일상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남편에게 아이를 떠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맞벌이를 하는 부모를 위해 사회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 큰 기대도 없이 근처 어린이집에 들렀더니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모유를 먹인다고요? 그럼 아이가 먹는 양만큼 젖을 젖병에 담아 오세요."
"천기저귀를 쓴다고요? 그럼 매일 필요한 기저귀를 챙겨주세요."
애초에 모유수유와 천기저귀를 강조한 건 아니다. 나의 평소 육아 습관을 묻길래 그대로 답변했을 뿐이다.
어린이집에서 요구한다면, 당장이라도 분유와 일회용 기저귀로 바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 손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이런 아기는 받아줄 수 없어요'라고 나오면 취업도 포기했을지 모른다.
미안하다 싶을 정도로 내 개인 사정을 존중해 준 덕택에, 이곳에 아이를 맡기고 다시 직장생활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입사를 포기한다는 사과문을 담아 보내려 했던 이메일은 결국 '곧 뵙겠습니다'라는 인사말로 변경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나의 고민이 모두 해결된 건 아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모유수유와 천기저귀 사용까지 하겠다는, 현재의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무모한, 결심을 했으니 말이다. 유축기 사용법은 알기라도 하고?
나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아니다. 아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못해 두려울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낯선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는가.
어디 그뿐이랴. 엄마 젖만 빨다가 갑자기 고무젖꼭지로 옮겨 가야 했다. 생애 처음 젖병을 무는 연습부터 필요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를 위해 회사도 생각보다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잘 적응할지 걱정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더니, 회사에서는 주 3일만 근무해 보겠냐고 제안했다. 애가 적응을 잘하면 정상적으로 주 5회 근무로 변경하고, 적응이 힘들다면 근무일수를 더 줄이거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도 된다고까지 나왔다.
드디어 근무 첫날...
젖몸살을 앓으면서까지 장시간 교육을 받느라 진땀 흘리던 첫 출근의 기억은 다행히 하루만의 악몽으로 끝났다.
회사에서는, 교대 근무를 하는 공장처럼, 모든 직원이 일괄적으로 휴식 시간을 가지는데, 내가 젖을 짜는 간격과 잘 맞았다. 이 시간이 아니더라도 근무 중 잠시 자리를 비우는 건 아무런 문제가 안 되었다.
내가 회사에서 유축기로 젖을 짠다는 사실은 부서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어야 할 시간마다, 화장실부터 달려가는 내 모습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퇴근 후 한 잔 하러 가자는 동료의 말에 '오늘은 시한폭탄을 떠넘길 사람이 없어서 힘들겠어'라고 말할 여유도 생겼다. 회사해 보관해 둔 젖병을 퇴근 후 집으로 가져가 냉장 보관하는데, 저녁 모임이 있으면 남편에게 아들과 젖병까지 위임해야 해서다.
친분이 없는 타 부서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기에 나의 괴상한 행동에 대해 회사에서 어떤 소문이 났을까 궁금하다.
휴식 시간마다 화장실 칸막이 한 공간에서 '쏴악 쏴악'하는 소리를 내며 유축기를 사용하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 의아해하지 않았을까? 한편, 하얀 액체가 가득 담긴 아기 우유병을 회사 냉장고에 보관하는 광경은?
빈 유모차를 끌고 회사에 등장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출근길에 마주친 회사 동료가 내 유모차를 보며 농담인지? 놀라움인지? 외치는 소리다.
아들을 유모차에 태워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고 나면 빈 유모차를 그대로 끌고 회사로 향했다. 어린이집에는 유모차를 세워둘 수 없어서다. 회사 사무실과 복도 사이 공간에 다들 개인 물품을 보관하길래 나도 덩달아 이곳에 유모차를 세워두었다.
몇 해 전 패스트푸드점에 들렀을 때다.
약속 시간이 남아서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데, 우리가 앉은 곳에서 두 테이블 건너편에 있던 여성의 행동이 눈에 띄었다.
당시 영국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인 것 같은 비키니 형태의 상의였다. 여성의 옷차림보다 아기를 안고 있는 자세가 더 눈에 들어왔다.
여성의 가슴이 반쯤 노출되는데 이런 차림으로 아기를 안고 있으면, 특히나 모유수유를 하는 아기라면,
'너 지금 밥을 먹을 시간이야'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러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잠에서 깬 아기가 눈앞에 보이는 엄마의 가슴을 만지는가 싶더니 이내 젖을 빨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도 그런 사실을 예측했는지 그 자세 그대로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공공 장소에서의 모유수유를 관대하게 대하는 영국인의 태도에 처음에는 놀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모유수유에 관대해서가 아닌, 노출이 심한 옷차림에 관대해서가 아닐까 싶다. 가슴을 드러내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나 가슴이 드러난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나 모두 동등하게 보는 것으로 말이다.
그즈음 내 남편과 아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휴대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남성들도 있었는데 다들 주문하느라 바쁜지 아기 엄마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성의 행동에 신경 쓰는 건 나뿐인가? 내 걱정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