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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서가 Apr 04. 2021

나의 목소리를 사랑하시나요?!

두 해 전쯤이었을까. 내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서 들어본 것이. 단톡방에서 영어 원서 낭독 녹음 파일을 공유했는데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테다. 그후로 이따금 녹음을 해서 인증에 참여하고 있지만, 다시 듣기를 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내 입밖으로 나온 말들을 다시 귀로 듣는다는 건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니까.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목에서 소리가 터져나오지만,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없다. 그냥 의사전달의 도구니까, 입밖으로 나온 순간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그 기능은 끝이 난다. 공기을 따라 희미해져 버린 목소리를 다시 붙잡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동안 어떤 '말'을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여겨왔지, 목소리를 소중하게 생각해본 적은 더더구나.


그도 그럴 것이, 난 여자 목소리 치고는 매우 저음이라서 '낭랑하고 또렷함'과는 거리가 멀다. 중학교 때는 집 전화가 전부였던 시절이라, "여보세요?"하고 벨소리를 듣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여느 때처럼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 건녀편에서는 "청일이니?"하고 남동생인지를 묻는다. 어른들은 꼭 아이가 전화를 받으면 이름을 불러주곤 했는데, 하필이면 한참 사춘기 소녀에게 변성기를 앞둔 남동생의 이름을 부를 껀 뭐람. "영주인데요..."하기도 그렇고, "네"하고 엄마를 바꿔드렸다. 쳇.


대학 시절에는 세례를 받고, 아주 신앙심이 충만할 때 대모님의 추천으로 성당에서 청년 전례부에 들게 되었다. 나름 뭐라도 해보고 싶은, 의욕이 넘칠 때라 '봉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때였다. 미사는 신부님이 집전하시지만, 전례부는 평신도들 중에 몇 명이 참여해 성경 말씀을 낭독하거나 진행을 돕는다. 난 몇 주간 선배 언니 오빠들에게 교육을 받고,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고 성경 일부를 낭독했다. 내 숨소리와 떨림까지 전달될 정도로 고요한 순간. 모두가 내 목소리만 듣고 있는 것 같은 부담감. 스피커를 통해 다시 번져나오는 내 목소리. 그때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도 부끄럽지만, 목이 자주 잠기는 탓에 '흠!흠!' 소리라도 내야 조금 더 투명한 소리가 나온다. 정말, 나의 여성성의 30%는 목소리가 앗아갔을 것이다. 흡연가도 아니건만, 가끔 오해를 받을 때면 무척이나 애연가이신 '아버지' 탓도 해본다. 3대가 사는 집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수시로 담배연기를 피워댔으니 간접흡연 때문에 내 목소리가 이런 것이라고. 밉다.


한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책 녹음 봉사를 고민해봤으나 '내 목소리 따위가!'하고 아주 빨리 포기도 했었고. 친한 동생이 '언니는 말을 재미있게 하니까, 때로는 엄청 웃기잖아. 일상 브이로그나 유튜브 같은 거 어때? B급 취향~'하고 농담반 권유한 적이 있었는데, 다소 뚠뚠해진 내 몸도 부끄럽지만 전달력이 별로 없는 내 목소리가 걸려서 격하게 손사레를 쳤었다. 딱히 콤플렉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다지 좋은 목소리가 아니라서 내세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내가 지난 3월에는 '목소리'가 전부인 '팟캐스트'를 개설했다. 올해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어느 사이트에서 채널 개설 권유 메일이 온 것이다. 내 블로그의 글 중, 책리뷰가 특색이 있으니 팟캐스트를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속으로, '아, 제 목소리 아시나요? 제가요?'라고 반문을 했지만 머릿속에 메일 내용이 떠나지를 앉았다. 진짜 해볼까......? 해봐?!


참, 신기하게도 정확히 일주일 후였나. 이웃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팟클래스 2기를 모집합니다'라는 글이 눈에 띈 것이다. 초보들을 위한 팟캐스트 개설 강의. '어머! 이건 들어야 해~'. 뇌보다 빨리 손가락은 댓글을 달고 있었고, 결제까지 단 5분만에 이뤄졌다. 그리고 한달간의 노력 끝에, 허접하고 서툴지만 나의 쌩! 목소리가 담긴 팟캐스트가 개설되었다.


점점 시대는 변하고 있고, 문자보다는 음성과 영상 시청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세상. 내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골라서 들을 수 있는 무수한 콘텐츠의 세상에 발을 드민 것이다. 컴퓨터라고는 노트북 한글 파일과 크롬 창 정도를 드나드는 것이 사용 범위의 전부이고. 스마트한 핸드폰을 사용해도, 인간이 그만큼 똑똑치 못해 기능이 아까울 정도인 나란 사람이.


대본을 쓰고 녹음까지는 수월했다. 글이야, 잘 쓰던 못 쓰던 오래 해온 것이니까. 근데, 편집을 해서 업로드를 해야 하는 과정이 너무 고역이었다. 이건 왜 이렇게 발음한대? 목소리가 왜케 졸려, 자장가 음성 버전인가. 듣는 사람마다 다 울려버릴 건가, 왜케 슬프냐고. 한 10번쯤 반복해서 듣다보니, 귀가 무뎌졌다. 어쩌다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으니, 모르겠다! 업로드. 그리고 함께 팟캐스트를 개설한 분들과 URL을 공유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칭찬.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차분하고요.'


'헐.'

그럼 다른 모임에도 공유해볼까? 가깝게 아는 사람 몇 명과 다정한 댓글이 늘 오가던 단톡방에 슬쩍 내 목소리를 전달했다. '별빛서가님의 목소리 좋아요. 다음 화도 기대가 됩니다.'라고 하나 둘 정성스런 댓글이 달렸고, 난 취해버렸다. 곤드레~ 만드레~ 난 취해버렸어!


그리고, 다시 생각해봤다. 취미가 아니라 일로 만들어볼까? 다들 성우처럼 낭랑하고, 예쁜 목소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드라마에도 예쁘고 멋진 주연 외에, 감초같은 조연도 많고. 특색있는 연기 덕분에 외모의 벽을 넘어 성공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목소리를 더 좋게 가다듬고 관리하면서 연습도 하고, 발음을 더 단단하고 명료하게 해보자라고. 퀄리티도 높여야지, 욕심이 생겼다.


어제는 팟캐스트를 업데이트 하는 날이라, 하루 종일 머리가 무거웠다. 주말이라 '녹음'할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방문을 꼭 닫고 차분히 대본을 녹음하려고 하면, 문밖으로 세상에 없는 영웅 놀이 중인 아이들의 목소리까지도 생생하게 담겼다. "야~ 챙챙! 내가 다 무찔러주마~ 난 !@#$!#%!" 업무환경으로는 최악인 상황. 대본과 핸드폰만 들고 주차장으로 가서, 차 안에서 조용히 녹음을 했다. 한 페이지 정도 읽었을까, "삐~~~~~~~~~~~~" "끼~~~~~~익". 차가 드나드는 소리가 이렇게 큰지 처음 알았다.


포기할 수는 없다. 난 크리에이터니까. 차를 끌고 아파트 뒷편 공터로 이동했다. 오가는 이가 거의 없는 곳이니, 딱 좋구나! 하고 또 반 페이지 정도를 녹음했는데, '후두두두둑! 두둑!' 비가 내린다. 더 세차게 내리고, 퍼부었다. 왜?! 보슬보슬 내리더니 갑자기?! '노이즈 제거'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 읽어가는데 친정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 포기.


긴 통화를 마치고 집에 와서, 아이들 입에 뭐 하나씩 물려주고 나서야. 급하게 한 회를 마감했다. 그 덕분에 목소리에 바쁨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난 또 해냈다. 몇몇 분들의 반응도 좋았고, '내 목소리'가 일을 하다니 뿌듯했다.


물론, 나에게 애정과 용기를 주기 위해 선한 댓글을 정성껏 달아주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 분들의 응원 덕분에, 세상에 쓸모 없을 거라고 여겼던 '나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할 때가! (정말 그분들을 위해 꼭 '로또' 되시라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싶다)


난 나이 마흔에 목소리를 발견했다. 아직 시작이고, 여전히 적응이라는 것도 되지 않지만 조금 내가 사랑스럽다. 누군가 '나는 뭘 잘 하는지 모르겠어. 내 쓸모가 뭐지?!'라고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것들은 우연히 발견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지금껏 켜켜이 쌓아온 것들 중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기회가 왔을 때 '안될 거라고 포기'하지 말고, 되는 방법을 찾으면 반드시 길은 열릴 것이다.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고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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