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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Oct 07. 2019

모라잔의 10분 글쓰기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10분간의 자유로운 이야기 <23>

- 흔히 많은 글쓰기 창작 교육에서 하고 있는  10분 글쓰기는 10분간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주고 필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10분 글쓰기는 소설(혹은 동화)을 기반으로 한  저의 자유로운 글쓰기가 될 것입니다. 매일 10분간 쓴 글을 맞춤법 수정 이외에는 가감 없이 게재합니다. -    



 “거 좀 조용히 합시다. 불이 바뀔 때마다 그렇게 촐싹대니 원 제대로 쉴 수가 있어야지.”

 참을 만큼 참은 윗사람이 한마디 했다. 하지만 아랫사람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윗사람은 심기가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아래로 내려가서 얼굴을 대면하고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자기 성격에 맞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결국 윗사람은 헛기침을 하고 그냥 그대로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다시 불이 바뀌었다. 아랫사람은 쾌활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움직이자! 시간이 없어! 아 참, 위에 있는 사람이 뭐라 말한 것 같은데……. 에이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중요한 건 오늘! 이 시간! 이 순간이니까! 자 이 행복한 시간이 다 가기 전에 마음껏 즐겨 보자고!

 다시 불이 바뀌었다. 윗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아랫사람은 예의가 없다. 시끄럽고, 뭔가 생각 없어 보이고 즉흥적이다. 그렇게 살면 후회할 텐데……. 아랫사람은 인생의 쓴맛을 보지 못한 햇병아리인 게 분명하다. 적어도 자기처럼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아왔다면 이렇게 인생을 허비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좀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며 사시구려.”

 윗사람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다시 불이 바뀌었다. 

 “후우!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으려니 정말 죽는 줄 알았네. 자 다시 인생을 즐겨 볼까?”

 아랫사람은 힘차게 움직이다 윗사람의 부탁인지 충고인지가 떠올랐다.

 “제가 사는 곳엔 뒤돌아볼 시간이란 없어요. 세상은 빨리 가고 기회를 놓치면 다음 시간까지 오랫동안 침묵해야 하죠. 그러니 뒤를 볼 시간에 앞을 보는 게 더 중요해요. 저는 오히려 윗사람 당신이 더 걱정되는 걸요. 왜 가만히 있나요? 운동 좀 해요. 그냥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다시 불이 바뀌었다. 

 “내게 인생이란 기다림이오. 그러니 앞으로 나가는 것보다.  아주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나는 즐겁소.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난 시간 속에 숨어 있는 내 인생의 그림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있는 중이오. 그것이 겉으로 보기엔 쓸모없이 보일 진 모르겠지만 말이오.”

 다시 불이 바뀌었다. 

 “자 다시 출발! 하나둘! 하나 둘! 뭐 당신 말을 듣고 보니 그쪽도 여러모로 힘들게 사시네요. 하지만 내가 사는 아래쪽에선 하루하루 새로운 도전들이 가득하지요. 그래서 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당신이 보기엔 뭔가 사고를 치고 줄행랑치는 사람들처럼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다 나를 키우는 소중한 경험들이라고요.”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과전류가 흐른 탓이었을까? 교통신호 제어장치가 너무 낡은 탓일까?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신호등의 빨간불과 초록불이 순간 동시에 켜졌다. 그리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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