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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Sep 01. 2020

동시 , 첫마음으로

하루에 한 번씩 써 보는 동시 –9-

파란 제라늄     



처음엔 이름도 몰랐어요. 작고 하얀 화분에 동그랗고 구깃구깃한 잎만 나왔어요. 마치 나처럼요. 교실 창틀 구석진 곳에 있어 물주는 당번 아이도 가끔 빼먹어요. 그래도 아무 말도 못했어요. 조용하고 말이 없는 친구거든요. 한 번은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어요. 창틀에서 떨어지려는 걸 간신히 버텼지요. 아이들은 그게 재밌었나 봐요. 한 번, 두 번, 세 번 손길이 거칠어졌어요. 그만해!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어요. 흔들리는 뿌리만 간신히 움켜잡았어요. 눈물이 나는 것도 참고 참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달려가던 아이와 너무 세게 부딪혔어요. 화분 째 날아간 제라늄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졌었어요. 흙이 떨어지고 뿌리가 드러났어요. 앙상했죠.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기만 했어요. 그때 내가 가만히 일어났어요. 화분을 바로 세우고 흙을 끌어 모았지요. 의외로 흙에선 향긋한 냄새가 났어요. 나는 제라늄 화분을 소중히 안고 창틀 가운데에 올려놓았어요.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다 말이에요. 그리고 아이들을 똑바로 쳐다보았어요.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후로 제라늄 화분은 잊고 있었어요. 방학 내내 말이에요. 여름의 끝자락 햇살이 가장 눈부신 날, 우연히 제라늄 생각이 났어요. 학교에 가서 교실 문을 열었어요. 더운 공기가 덮쳐왔어요. 창틀에 버려진 듯 홀로 있는 작은 화분이 보였어요. 살아있을까?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화분 앞에 섰어요. 방학 내내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는데 돌보는 사람 하나 없었는데, 작은 잎사귀를 단 제라늄은 어느새 꽃을 피우고 있었어요.  파랗고 예쁜 꽃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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