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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Dec 16. 2020

화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영화 <두 교황>을 보고

 “두 교황”은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와 현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의 만남을 다룬 영화이다. 연출된 장면과 실제 장면이 교묘하게 편집된 영화는 두 배우 앤소니 홉킨스와 조너선 프라이스의 완벽한 연기로 실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는 것 같은 생생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두 사람은 극적으로 만나고 갈등하고 화해하며 친구가 되었을까? 두 사람은 월드컵 경기에서 서로 자국팀을 응원하며 함께 경기를 보았을까? 사실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리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이 영화는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지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두 종교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단순히 신앙과 믿음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며,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느냐에 대한 영화적 대답이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추기경(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허락을 받기 위해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다. 거의 포기 수준에 이르렀을 즈음 교황은 면담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온다. 호르헤는 곧바로 로마로 날아가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만나게 된다.

 전통과 격식에 대한 엄격함으로 무장한 베테딕토 16세와 자유로움과 친근함으로 대표되는 호르헤 추기경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두 사람이 맨 처음 만나는 장면도 인상 깊다. 요한바오로 2세가 선종한 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데, 화장실에서 아바의 “댄싱퀸”을 흥얼거리는 호르헤 추기경과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라칭거 추기경(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 16세로 선출된다)의 모습은 두 사람의 선택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1차 선거로 차기 교황을 뽑지 못하자, 자신이 교황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라칭거와 여전히 주저하는 호르헤의 모습도 묘하게 대조적이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호르헤의 은퇴 문제 때문에 교황과 추기경으로 다시 만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는 여전하다. 주교와 추기경의 복장의 차이를 따지는 교황과 처음 만난 정원사에게도 격의 없이 대하는 호르헤의 모습에서부터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과 성직자의 역할에 대해서까지 두 사람의 생각과 신념은 전혀 좁혀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두 사람의 이러한 거리는 영화 후반까지 별로 좁혀지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에서 두 사람이 인간적인 공감과 이해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두 사람의 신념과 선택은 여전히 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두 교황이 같이 축구 중계를 보면 쉽게 해결되는 수준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가 형제임을 고백한다. 그들이 서로 화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 사람의 신념의 거리, 선택의 방향이 같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선택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것을 선택의 무게와 고뇌에 대한 공감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교황”은 “화해”에 대한 영화이고 인간의 선택이 주는 무게에 대해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두 교황은 자신의 삶 전체에서 수많은 선택을 해왔다. 젊은 시절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호르헤는 사랑하는 연인 에스테르에게 청혼하는 대신 수사신부가 되기로 선택한다. 신의 부름에 응답한 그의 선택은 확고하고 단호했을까? 그렇지 않다. 황량한 언덕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젊은 호르헤의 모습은 그의 선택이 절대 쉽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1970년대 그는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자국민 3만 명 이상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최악의 군사독재 시절. 그는 사제들을 구해보겠다고 정권과 협력하고 그 과정에서 사제들과 대립하게 된다. 결국, 그의 선택 때문에 예수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사제들은 구속되고 고문당하게 된다. 그 사건들은 호르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가톨릭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교황이 되었던 라칭거는 어땠을까? 가톨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신학자 중 하나였던 그는 교황으로서의 선출되어 가톨릭의 근본주의를 지키고자 했고 가톨릭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사제들의 성폭력 사건을 덮는 선택을 하게 된다.(사실 그는 신학자로 있을 때 카톡릭 사제의 성추행 문제에 매우 단호하게 목소리를 냈던 인물이었다.) 그는 콘클라베에서는 적극적으로 교황에 자리에 오르기 위한 노력했지만,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된 뒤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교황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교황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700년 만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호르헤와 라칭거는 그들의 잘못된 선택과 그 결과 앞에서 고뇌한다. 그것은 가장 존경받는 두 종교 지도자조차도 신앙의 힘으로도 극복하지 못할 고뇌로 보인다. 만약 두 사람이 교황과 추기경으로서의 만남을 계속했다면 그들은 화해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신과 가까운 인간이 아니라 실수투성이의 상처받는 인간의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인간임을 인정한 그들은 결국 서로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해하고 구원받는다.

 세상의 사람들은 신념과 믿음에 따라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상은 그런 선택에 가치를 부여한다. 보수와 진보, 일베와 메갈이라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구분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의되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어렸을 적 나치의 유켄트 소년단이었다는 전적 때문에 베네딕토 16세를 나치라고 부르는 사람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을 동지를 팔아넘긴 “독재자의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말 사람은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일까?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더 많이 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에서 어떨 때는 진보적인 선택을 그리고 어떨 때는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 스스로 교황의 자리에서 내려오겠다는 라칭거와 교황은 절대 스스로 내려와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호르헤의 대화 장면을 보면 과연 누가 진보고 누가 보수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선택의 시간에 우리는 과연 명확한 신념과 확신으로 완벽한 선택을 하고 있을까? 아쉽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자주 하던 말씀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잘못된 선택은 없다.”였다. 사회 문제에 항상 진보적인 활동을 해 오신 목사님이 그런 발언을 하다니! 혈기 왕성했던 당시의 나는 목사님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수많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나는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게 아니었을까?

 “세상에 잘못된 선택은 없다. 선택의 결과에 따른 무게와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역사상 보수와 진보를 선택한 사람들은 서로 수많은 잘못된 선택을 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신념이 완벽하다고 믿어왔다. 자신이 선택한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실수를 은폐하고 잘못을 상대에게 돌렸다. 그렇게 우리는 화해할 수 없는 신의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완벽한 신의 자리에서 불안전한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지 않으면 세상의 화해는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가치가 화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 가까워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가 결정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막중한 무게와 책임을 다하며 서로를 실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불안전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 그 순간을 직면해서야 우리는 양 끝단에 자리잡고 있는 서로에게 화해와 용서를 이야기할 수 있다. 양 끝단에 서 있었던 두 교황이 인간으로서 서로를 바라보았던 그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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