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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Jul 05. 2021

초단편-학교라는 이름의 괴물

01- 시간은 영원하다?

“야, 거기!”

교문 단속 장 선생이 크게 소리쳤지만 재빠른 그 녀석은 순식간에 학교 건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누구였을까? 불타는 것 같은 빨간 모자의 잔상만 남을 뿐 녀석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저렇게 튀는 모자를 쓴 녀석이 우리 학교에 있었던가?

“저 새끼 뭐야? 에이!”

장 선생은 녀석을 붙잡아 한바탕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학교 본관 건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수업 종이 울리자마자 빨간 모자 녀석은 2학년 2반 교실에 후다닥 들어왔다. 학교 교문에서 교실까지 한달음에 달려왔어도 녀석은 숨이 차 보이지 않았다. 빨간 모자 녀석은 윗니가 다 드러나 보이게 씩 더니 교실을 쭉 둘러보았다. 교실 맨 가장자리에 덩그러니 빈자리가 보였다. 녀석은 냉큼 달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차렷 선생님께…….”

 “자암깐!”

 기술 윤 선생은 특유의 늘어지는 말투로 반장인 선호의 경례 구호를 중지시켰다. 윤 선생의 시선은 빨간 모자 녀석에게 꽂혀 있었다. 

 “새끼……. 너? 돌았냐?”

 윤 선생이 당구봉을 잘라 만든 지휘봉으로 빨간 모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빨간 모자는 무엇이 재미있는지 여전히 싱글벙글 이었다. 오양중학교의 살아있는 전설 윤 선생의 목소리를 듣고 이렇게 의기양양한 녀석은 빨간 모자가 처음일 터였다.  흑곰이라는 별명에 맞는 덩치 큰 체구가 저벅저벅 빨간 모자에게 다가갔다. 

“벗어라!”

“에이 선생님, 이건 패션인데요?”

“뭐? 패션? 이 자식이, 넌 이름이 뭐냐?”

 학교에서 윤 선생에게 이렇게 유들 거리며 대거리를 하는 녀석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기억에 남았을 텐데?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얼굴…….

 “선생님! 학생 이름도 모르세요?”

 “이 녀석 아주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윤 선생이 손을 뻗어 빨간 모자를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녀석은 어떻게 알았는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손을 피했다.

“어쭈!”

 “에이, 그냥 수업하시죠. 모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셔도 돼요? 벌써 5분이나 지났어요. 째깍째깍!”

 녀석은 여전히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윤 선생의 눈썹이 점점 올라갔다.  얼굴도 차츰 검어졌다. 윤 선생은 화가 나면 피가 얼굴에 몰린다. 그러면 까맣게 탄 얼굴에 피가 쏠려 더욱더 새까맣게 보인다. 그래서 별명도 흑곰이었다. 윤 선생이 흑곰을 변신하게 만든 녀석은 오늘이 제삿날이다.  

 “뭐? 시간 낭비? 네 녀석의 시뻘건 모자가 수업 방해하는 건 안 보이냐!”

 흑곰이 포효하듯 윤 선생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진짜 벗어요? 그냥 선생님이 눈 딱 감고 수업하며 모두 즐겁잖아요. 시간은 계속 가고 있어요. 시간 안 아까워요? 째깍째깍!”

 “이 녀석이 정말 말로 해선 안 되겠구나!”

 윤 선생이 소매를 걷었다. 소싯적 유도선수를 했었던 윤 선생의 굵은 팔뚝이 험악한 표정을 드러냈다. 

 “아, 아 알았어요? 가져가셔요.”

 빨간 모자가 포기하는 듯 쓱 머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윤 선생이 다시 손을 뻗자마자 녀석은 순식간에 뒤로 얼굴을 쭉 뺐다.

 “잠깐만요. 선생님! 정말 모자를 벗기시려는 건 아니죠? 벗기면 큰일 날 텐데.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녀석이 이렇게 말하며 자기 모자를 가리켰다. 빨간 모자에는 하얗고 두꺼운 글씨로 “Time is Forever!”라고 쓰여 있었다.

 “시간은 영원하다? 그게 뭐?”

 “후회하실 텐데요. 째깍, 째깍! 째깍! 째깍!”

 녀석이 찡긋 윙크했다. 

 “시간이 영원하긴 뭐가 영원해! 대입 시험까지 456일  보여? 너희들에겐 남은 시간이란 없어.”

 윤 선생이 칠판에 쓰여 있는 숫자를 가리켰다. 녀석의 눈도 굵은 칠판 글씨를 따라갔다. 

 ‘걸렸다 요 녀석!’

 윤 선생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자를 확 낚아챘다. 헛소리를 늘어놓는 녀석에게 시간만 낭비했다. 

 ‘이 녀석 이 모자는 이제 내 것이야!’

 윤 선생은 씩 웃으며 녀석이 아무리 사정사정해도 이 보기 싫은 새빨간 모자를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윤 선생 앞에 녀석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웃고 있다. 새빨간 모자를 그대로 쓴 채로……. 

 “이 녀석이 어느 틈에!”

 윤 선생은 화가 나서 모자를 다시 빼앗았다. 하지만 녀석의 모자는 언제나 다시 녀석의 머리로 돌아가 있었다. 빙글빙글 웃는 녀석, 윤 선생은 점점 더 화가 났고 그럴수록 녀석의 모자를 빼앗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수십 번, 수백 번, 수천만 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났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녀석의 모자를 반드시 뺏어야 한다.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어! 윤 선생은 녀석의 모자를 뺏는 것에 온 힘을 집중했다. 그렇게 한 시간,  한 달, 수십일, 수백 일, 수천 일…….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모자를  뺏고 뺏어도 빨간 모자는 언제나 녀석에게로 돌아갔다. 윤 선생은 온몸이 땀에 젖었다. 이제 손을 들어 올릴 힘도 없었다. 하지만 모자를 뺏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새 왜 모자를 뺏어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까맣게 잊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그에게 모자를 뺏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잠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끊임없이 팔을 뻗는 그에게 녀석은 씩 웃으며 말했다.

 “거 봐요. 시간은……. 영원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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