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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Jul 05. 2021

초단편-학교라는 이름의 괴물

02- 공부 주사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열자마자 축축하고 잔뜩 먼지를 머금은 공기가 세현을 덮쳐왔다. 세현이는 자신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아파트 단지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지하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짜식 무서우냐?”

 앞장선 오택이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리며 세현이를 쳐다보았다.

 “헛소리 말고 앞장서기나 해.”

 세현이는 괜히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속마음으론 기분 나쁜 축축함이 가득한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새삼 부모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오택이에게 들은 대로라면 엄마들이 매주 이 지저분하고 끈적거리는 곳을 내려갔다는 말이 된다. 오로지 자식들의 성적을 위해.

 “이거 어렵게 구한 거야.”

 한 달 전 엄마는 붉은색 액체가 들어 있는 앰풀 병과 작은 주사기를 세현이에게 꺼내 보였다. 

“싫어! 난 이상한 거 안 맞을래.”

 세현이가 기겁했지만 엄마는 굽히지 않았다. 

“얘가 지금 철없는 소리 한다.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너 바보같이 굴 거야?”

“아이, 참 엄마! 공부는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알아서 공부해서 등수가 10등 붙박이니? 잔말 말고 이거 한 대 맞고 자.”

“주사를 맞는다고  1등 되면 벌써 100번은 맞았겠다.”

“이 녀석이! 이렇게 좋은 걸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니? 아무나 못 맞는 거야. 이거.”

“그럼 엄마나 맞아. 난 주사라면 끔찍하다고.”

“얘가 정말! 언제까지 10등에서 머물래? 응? 이거 너희 반 송오윤도 맞는 거야.”

“뭐? 오윤이가 이걸 맞는다고?”

“그래, 걔가 어떻게 항상 전교 1등을 하겠니?”

 송오윤이란 말에 세현이는 붉은 앰풀 병을 다시 쳐다보았다. 녀석의 실력이 단순히 노력이 아니었어? 

 “말도 안 돼 그런 건 반칙 아냐?”

 “반칙은 무슨. 엄마가 시험지를 빼돌렸니, 성적을 올려달라고 담임한테 청탁했니? 머리 좋아지고 집중력을 높이는 약물을 주사하는 건 반칙이 아니라 정당한 지원이야.”

 절반은 엄마의 말에 홀렸고 절반은 전교 1등 송오윤에 대한 부러움으로 세현은 주사를 맞았다. 효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세현이는 중간고사를 보고 반에서 5등이 되었고 전교 등수는 20등이나 올랐다. 그다음부터 세현이가 먼저 주사를 찾았다. 1주일에 한 대씩 꾸준히 맞아야 하는 공부 주사를 맞으면서 세현이는 공부에 자신감도 붙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문제없었던 세현이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부모님의 괌 여행 때문이었다. 매주 맞아야 하는 공부 주사를 부모님이 챙겨주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세현이가 직접 챙겨야 했다. 

 “오택이가 주사를 줄 테니 그걸 받아서 맞아.”

 엄마는 이 말 뿐이었다. 엄마가 학교에서 사이코라는 말을 듣는 오택이 엄마와 왜 친하게 지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엄마는 오택이네와 공부 주사를 공동 구매했고 이번 괌 여행도 함께했다. 별수 없이 오택이에게 공부 주사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오택이의 사이코 기질이 나타났다.

 “그런데 너 공부 주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지 않냐?”

 “네가 그걸 알아?”

 오택이 따위가 주사 성분을 알리는 없을 테고 기껏 해봤자. 어디 제약사 제품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게 아닐까?

 “나는 주사액을 추출하는 걸 늘 보거든. 우리 엄마는 혼자 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보고 싶다고 고집을 피웠지. 그런데 가길 잘했어. 그거 직접 해보면 꿀잼이거든. 그래서 너에게도 보여 주려고.”

 불쾌하게 웃는 오택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공부 주사를 얻기 위해  이 녀석의 기분을 맞춰 주어야 했다.

 “뭐야, 공부 주사는 사 온 게 아니야?”

 “사 오긴 했지 그 녀석을…….  너희 엄마라 우리 엄마가 공동 구매로 어렵게 구한 거야.”

 그 녀석? 그게 무슨 말이지?  오택이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별수 없이 세현은 오택을 따라 지하실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지하실은 어두컴컴했다. 세현이는 어둠이 눈에 익을 때까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희미한 비상구 불빛에 의지해 축축한 벽을 더듬고 간신히 스위치를 찾았다. 팟! 하고 불이 켜졌다. 동시에 쇠사슬에 묶여 있는 어떤 물체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지저분한 몰골의 사람이었다. 

 “이, 이게 뭐야!”

 세현이 뒷걸음질 쳤지만 오택이는 그의 등을 힘껏 밀었다. 

 “저 녀석……. 예전엔 대기업 간부였었데.”

 “공부 주사가 서, 설마”

 “저 녀석 뇌에서 뽑아내는 거야. 별로 아프진 않아. 일주일에 딱 두 번씩 뽑아내면 우리도 좋고 저 노숙자도 밥 먹고 살아서 좋고 일석이조지. 그리고 말이야…….”

 오택이가 설명을 마치기도 전에 세현이는 그 자리에서 구토하기 시작했다. 매주 맞았던 주사가 저 늙은 노숙자의 뇌에서 뽑은 것이라니! 그 붉은 액체가 온몸을 돌아 다시 뇌로 가는 것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크크, 네가 그럴 줄 알았다. 직접 보니 맞기 싫어져? 그런데 어쩌나, 이걸 안 맞으면 성적이 떨어질 텐데…….”

 오택이는 히죽거리며 늙은 노숙자에게 다가갔다. 이미 반쯤은 정신을 잃은 듯한 그는 짐승 같은 신음을 내고 있었다.

 “오윤이가 맞는 건 30대가 채 안 된 녀석이래. 구하려고 수억 깨졌다던데? 우리 부모님들이 능력만 되었어도 그 녀석 같은 놈은 벌써 우리 발아래 있었을 거야.”

 오택이가 늙은 노숙자를 이리저리 툭툭 건드렸다. 늙은 노숙자는 마치 겁먹은 짐승처럼 머리를 숙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오택이는 머리에 거침없이 주삿바늘을 꽂았다. 늙은 노숙자가 비명을 질러댔지만 오택이는 멈추지 않았다. 이내 불그스름한 액체가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아무 짝에 쓸모없는 인간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최고의 방법이지. 안 그래?”

 오택이가 주사기를 자신의 팔뚝에 찌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넌 정말 최악의 사이코야!”

 세현이의 고함이 지하실을 울렸다. 하지만 오택이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 네 차례야. 맞을 거야? 안 맞을 거야?”

 오택이가 남은 주사기를 세현이에게 건네주었다. 세현이는 한동안 주사기와 오택이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그리고 울상 가득한 얼굴로 늙은 노숙자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푹!”

 주삿바늘이 그의 머리에 꽂혔다. 불그스름한 액체가 천천히 주사기에 흘러 들어갔다. 그와 함께 축축한 지하실 공기도 불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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