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검은 물…. 검은 물이 출렁거린다. 새벽 3시, 한강 다리에는 굉음을 내며 달려드는 차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거대한,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검푸른 물만 다리 아래로 무겁게 흐르고 있다. 그곳, 안개가 뿌옇게 끼어 가로등 불빛도 희미한 그곳에 커다란 가방을 끌고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그림자가 보인다. 깡마른 체격에 퀭한 눈동자를 한 그는 하늘에서 무엇인가 찾으려는 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힘겹게 돌려 사방을 쳐다본다. 하지만 지금은 달도 별로 뜨지 않은 캄캄한 밤…. 요란한 자동차 소리만 하늘에 가득 차 있다.
“다 틀렸어. 이제…. 끝이야.”
그는 다리 중간에 우뚝 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으악!”
그는 무엇인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듯 이미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길고 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도 그의 비명을 들어주지 않는다.
“흑흑흑….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이제 더 이상….”
이내 그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된다. 강에서부터 피어오른 안개는 더욱 짙어져 지나가는 자동차들도 차츰 안개에 갇혀 보이지 않게 되었고 단지 엔진 소리만 안개 속에서 으르렁거린다.
“따르릉!”
그의 윗옷 주머니에 아무렇게 쑤셔 박혀있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댔지만, 그는 그 전화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검푸른 한강 물을 향해 휴대전화를 힘껏 던져 버린다.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는 검은 강물 속에 떨어져서야 입을 굳게 다문다.
“미안해….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너에게도 손을 내밀 수 없어.”
그는 고개를 숙이고 혼자 말로 중얼거린다.
“뭐가 잘못된 거지.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틀려버린 거지?”
어렸을 때, 아무것도 걱정할 일이 없었던 그때, 그리고 같이 있으면 아무것도 겁낼 게 없었던 친구들과 함께 있었을 때, 그때만 해도 이런 절망적인 일이 자신에게 생길지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때…. 어렸을 때부터 문제였을지도 몰라. 아니! 나 같은 건 애당초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그는 마치 강물에 뛰어들 기세로 다리 난간에 매달린다. 밑을 내려다보니 안개 사이로 띄엄띄엄 검푸른 물결이 소용돌이를 치는 검은 한강이 보인다. 그는 이내 검은 한강에서 눈길을 거두고 난간을 잡고 주저앉는다. 그의 심장은 쿵쾅대고 있다. 고소공포증…. 높은 곳을 내려 볼 엄두조차 못 내는 자기 자신을 그는 잠시 잊고 있었다.
“제길, 죽는 것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다니 이런, 바보 자식….”
그는 고개를 푹 숙인다. 두 뺨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흑흑흑….”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을 때, 안개가 세상의 모든 소음을 다 집어삼켜서인지 갑자기 고요해진 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오기 시작한다.
“날 키우고 싶니?”
“..... ?”
“날 키우고 싶니?”
작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이번에는 작지만 아주 분명한 목소리다.
“뭐, 뭐지?”
그는 순간 놀라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방엔 안개가 펼쳐져 있어서 온통 하얗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려도 아무것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날 키우고 싶니?
세 번째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그 소리가 검은 한강 쪽에서 들려오는 것을 눈치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그의 몸에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가까이 가서는 안 될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 같다. 하지만 묘하게도 무언가 그곳으로 끌려가게 만드는 호기심이 그에게 일기 시작한다. 마치 정신을 놓고 물귀신에게 끌려들어 갔다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난간에 손을 단단히 잡으며 아래를 조심스레 내려다본다. 좀 전까지 시야를 가린 안개 때문에 언뜻언뜻 보였던 검푸른 강물이 이제는 선명하게 보인다. 게다가 이상하게 안개가 걷힌 부분은 검고 거대한 구멍처럼 보였다. 소용돌이가 치는 검은 구멍….
“날 키우면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네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그는 마치 대화를 하는 것처럼 그 목소리를 향해, 소용돌이를 향해 힘겨운 대답을 토해낸다. 이상한 것은 이 목소리를 들은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그의 머리와 가슴에 가득 차 있던 슬픔과 자책감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 깊은 물 속을 바라봐도 더 이상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
“날 키우고 싶니?
네 번째 목소리는 아주 달콤하게 들려온다. 마치 어렸을 때 그가 자주 먹었던 크림빵을 가득 입에 문 것 같이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그려진다.
‘그래, 나에 대한 모든 걸 다 부숴버리고 싶어.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다시! 다시!’
“조, 좋아”
마치 어린아이가 대답하는 것처럼 그는 해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은 둥실 떠올라 다리 난간 위로 올려진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였지만 이제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는 듯 난간에서 두 발을 딛고 우뚝 선다. 두 눈은 여전히 검은 소용돌이를 그리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빙글빙글 도는 검푸른 강물은 점차 거대한 검은 구멍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는 블랙홀처럼…. 그리고 그 검은 구멍 속에서 번쩍하고 노란 불빛 두 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짐승의 낮은 울부짖음도 들려온다.
어디선가 “그만둬!”라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지만 이미 늦은 게 분명하다. 그의 두 눈에는 이제 두려움도 슬픔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의 눈은 마치 검은 구멍 속에서 빛나는 노란 불빛처럼 기분 나쁜 샛노란 빛을 띠기 시작한다. 눈동자도 없는 두 눈….
“킬킬킬”
구멍 속에서 소름이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도 그 소리에 따라 웃기 시작한다.
“킬킬킬”
순간 수십 개의 검고 털투성인 거대한 다리들이 검은 구멍 속에서 뻗어 나오기 시작한다. 벌레, 그것은 시커먼 몸에 샛노란 눈을 가진 하늘을 다 가릴 정도로 거대한 벌레다.
“이제, 난 너하고 영원히 살게 될 거야.”
어느새 안개는 마치 먹물을 뿌린 것처럼 검푸른 빛을 띠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암흑으로 뒤덮인 세상, 그도 암흑 속에 갇혀버린다. 그 어둠 속에서 벌레의 샛노란 눈만 번쩍인다.
“꾸울꺽!”
<계속 월요일 마다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