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할머니
남자 친구가 물었다. 10월 11일이 부모님 결혼기념일인데 무슨 선물을 해야 할까?
몰라, 나는 한 번도 할 일이 없었어.
그렇다. 나는 태어나면서 엄마와 할머니와 자랐고 아버지에 대해 98 퍼센트 아는 게 없기 때문에 결혼기념일을 챙길 일이 없었다. 나에게 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나 다. 일을 하는 엄마와 집에서 밥을 챙기는 할머니 밑에서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라느라 원래 내 인생에 자리가 없던 아버지를 궁금해해 본 적 없이 자랐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말 아래 따라오는 단어들과 나는 사실 아주 멀게 자랐다. 그러나 30년을 살아도 다들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느 타이밍에 아 나는 아버지가 안 계시고 어머니와 할머니와 여자 셋이 가족이라고, 누구 한 명쯤 어색하지 않게 말을 꺼낼지 고민한다. 나 스스로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나에 대한 사실인데 이야기를 전해 듣는 사람들 중에 괜히 어색해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내 남자 친구와 처음 통화할 때 나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애가 성격이 못돼 처먹었다고. 농담 반 사실 반으로 나는 엄마에게 못돼 처먹은 딸이다. 20년을 열심히 키워놨더니 24살 이후로 해외에 나와 드문드문 겨우 2년에 한 번 집에 돌아가 2주를 채 못 채우고 다시 떠난다. 하필 우리 집과 이모네 집이 한 칸 띄고 옆집이라서, 서울에서 대학 나온 사촌동생의 제주도로의 귀환은 매우 반갑지만 딸이 곁에 없는 엄마의 외로움을 자극한다. 우리 가족 이야기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너무 고마운 이모네 가족이다. 사촌동생은 제주에와서 결혼을 하더니 벌써 뱃속의 아기가 5개월이다. 아무튼 못돼 처먹은 딸은 독립적이고 대장부 같이 일을 하던 엄마에게서 배운 독립심으로 해외 생활 7년을 채우고 있다.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나 기억하는 순간 부터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취업을 하고 엄마는 그 일을 그만뒀다. 그만두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제 그만두고 본인의 쓸모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본인이 쓸모를 어디서 찾고 싶은지, 돈인지 공부인지 봉사인지 일을 그만두고 1년이 좀 안되는 시간 동안 엄마의 전화 내용은 무엇이 맞는 길인지 고민한다. 마치 엄마가 처음 교환학생가서 내가 미국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며 계단에 숨어 울던 나로 돌아간 것같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전화로 오늘 엄마 우울해, 글이 잘안써져 라고 할 때 마다 걱정이 너무 많았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중국 여행을 갈 준비 중이었다. 여행 가기전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뇌졸중 판정을 받고 정말 놀랍게도 지금 생각하면 다행인, 갑자기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리고 독립적이고 대장부 같은 우리엄마는 쭉 할머니를 병수발 중이시다. 할머니는 괄괄하고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내가 스스로 못 쓰는 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을 가고 틀니를 껴서 밥을 꼭꼭 삼시세끼 챙겨 먹는 것은 할머니의 자존감이다. 우리 가족은 본인의 쓸모에 대해 굉장히 진지한 편이다.
우리 가족을 간단히 소개하는 첫번째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