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를 앞둔 엄마의 걱정

엄마는 걱정이 많다

by 곰곰

남자 친구의 이직과 각자의 비자 사정과 남자 친구 누나의 결혼식과 백신과 이러저러한 사정들이 밀려 9월에 드디어 비행기표를 샀다. 상견례를 하자고 남자 친구 부모님과 우리 엄마랑 이야기를 다 해뒀다. 격리 면제 서류도 다 받고 이제 날짜가 되어 비행기를 타면 우리 드디어 한국을 가는구나! 했다. 어쩐지 물 흐르듯 다 진행이 되길래 마음 편히 일을 하던 날 아침, 남자 친구의 한국 비자가 거절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자의 설움이란. 아 그럼, 상견례는 엄마와 나 남자 친구의 부모님 넷이서 하는 건가. 참 어색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격리 면제를 받았지만 어차피 아침 여섯 시부터 일하는 일정이라 시차 적응도 금방이었다. 아홉 시면 잠이 들고 다섯 시 반과 여섯 시 사이에 눈을 떠 일을 시작했다. 그 사이사이 엄마와 상견례를 준비해야 했다. 상견례를 준비하면서 엄마의 몰랐던 모습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가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우선 엄마는 내가 아빠 없이 자랐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나 스스로는 엄마와 할머니 손에 자랐다는 게 자랑스럽지만 남들 눈에는 부족하다고 보일까 봐 걱정이 많았다. 엄마는 운전을 하면서 삼일에 한 번은 나에게 물었다.

" 만약에 시댁이 아빠 왜 없냐고 하면 어떵할거?"

" 만약에 시댁에서 아빠 없다고 못 배웠다고 하면 어떵할거?"

" 만약에 시댁이 아빠 없어서 마음에 안 들다고 하면 어떵할거?"

안 그러시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온갖 가정의 질문들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엄마 만약에 그쪽에서 아빠 없다고 내가 싫다고 하면 박차고 나와야지"








남자 친구의 성정을 보면서 시댁 부모님들이 그걸 따지실까 싶었지만 자기 자식일인데 행복하고 온전한 전형적인 부모님의 형태의 가족에서 자란 남의 자식과 결혼시키고 싶을 수도 있다고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앞으로 평생 봐야 할지도 모를 사람들을 맞는 건데 이왕이면 내 가족사에 편견이 없는 분들과 나도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열심히 키워준 분들의 노고를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왜? 굳이?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슬플 일이나 내가 감당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아빠의 걱정이 지나면 그다음 엄마의 걱정은 상견례 장소였다. 하필, 한국 그리고 제주도는 거리두기 4단계로 점심시간에는 4명밖에 모일 수가 없었다. 호텔이 많은 서귀포시가 아니라 제주시에서 만나야 했는데 호텔들이 또 코스요리를 안 한단다. 엄마는 코스요리가 하고 싶었다! 반찬이 많은 나오는 상견례로 유명한 정식집은 사촌동생이 하고 난 뒤 "이모, 별로~"라고 했기 때문에 엄마는 전전긍긍했다. 나는 오마카세 집도 좋고 해산물 요리가 잘 나오는 집도 좋은 것 같은데 어느 하나 엄마의 눈에 차지 않았다. 나와 같이 호텔에 가보자며 새벽 여섯 시부터 서너 시간의 미팅을 하고 있는 내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딱 호텔 하나가 코스요리를 4명에게만 제공할 수 있다고 했고 나는 엄마가 이제 마음을 놓겠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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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내 옷과 신발이었다. 엄마가 분명 한국의 날씨가 선선하다고 했기 때문에 챙겨 온 옷들은 한국에서 입기에 더웠고 여름 원피스 한장은 무릎 위 길이지만 엄마 눈에는 짧았다. 원래 아이보리색인 운동화는 엄마 눈에는 빨지 않은 하얀 운동화로 보였는지 보일 때마다 왜 빨지 않냐며 잔소리를 했다.

"엄마!!!! 이거 원래 이런 색이야!!!!!! 이쁜 색이라고 남자 친구랑 품절된 거 겨우 구한 거!!!!"

라고 오백 번은 말한 것 같다. 세시 넘어 일이 끝나고 엄마는 나를 굳이 차에 실어 제주시내 옷집을 다녔다. 아 제주도가 시골이라는 걸 이럴 때 깨닫는다. 어느 하나 엄마와 내 눈에 차는 '상견례' 옷이 없었다. 엄마는 내 눈이 뺄라져서 그렇다며 내 탓을 했으나 결국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그다음은 상견례 선물이었다. 내 잘못이다. 어디서 누가 나에게 상견례 선물을 해야 한다고 해서 엄마에게 한마디 한 걸로 엄마는 스물네 시간 자기 전까지 고민했다. 상견례 전날인 남자 친구 누나의 결혼식날, 우리는 선물을 하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고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울에 갔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왔다.

" 무사 엄마가 메시지 보낸 거 안보 맨? 엄마가 이모 스카프 두른 거 사진 보내시는 보고 골라보라."

엄마는 마음을 바꿨고, 운전을 못하므로 이모를 대동하여 그 밤에 천연염색 스카프를 사러 간 것이다. 개인적으로 스카프도 천연염색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말을 잃었으나, 어쩌겠는가.


엄마의 걱정과 마음은 내가 헤아리기엔 내가 부족하다. 철부지 딸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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