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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순 Oct 13. 2021

그대가 잠든 사이에

 처음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이유는 그냥 '예뻐보여서'였다풀어서 쓰면예쁜 노트를 사서 나만의 이야기를 적어나간다는 것이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자아를 세워주는  같아서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가 짧아져 갔다목표는 희미해지고 어느새엔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고 별다를  없이 되풀이되는  일상을 그대로 녹여내고 있었다그렇다찬란했던 시간들을 함께해준 사람이 잠시  곁을 떠난 지금적어도 나는 다시금 나의 길을 되돌아보고는 있다내가 어떤걸 좋아했었는지내가 어떤걸 싫어했었는지.

 나는 그래도  윗사람의 말을  ' 듣는 인생' 살아왔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  듣는 인생'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노예가 되는 인생이었다나는 사회가 바라는 '사람' 되는 안전한 길을 택했고 내가 살아가면서 맞부딪칠  있는 수많은 위험을 하나라도  많이 인지하고피하고 싶어서 최대한 열심히 발버둥쳤다그런데 이제와서보니 그렇게 필사적으로 지켜왔던  삶의 단조로움이 조금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의 합격증만 기억이 난다. 소중한 사람이 꿈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나를 떠나있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순간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혀 문제 없다고 했었다나는 버텨낼  있다고 장담했다처음  사람을 봤을 뭔가 이상한 끌림 같은 것이 있었던  같지만 지금 나는 그게 뭐였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이렇게  사람과의 미래를 계획하고 기다리게  것이라는 암시 같은 거였을까?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1초면 확인이 가능한 메신저도 있고수화기 너머로 목소리도 들을  있는데다가 보고 싶으면 그냥 화상전화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면 그만이었다감정 소모를 걱정하는 주변인들의 이야기와 먼저 장거리 연애를 경험해본 경험자들이 남기고  흔적들을 찾아보면서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힘들어하고 포기했을까 의문을 품기도 했다그런데 막상 직접 겪고보니세상에 혼자 내버려진 것처럼 느껴졌다나는 이렇게 제자리 걸음중인데이것 저것 합격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사람의 세계가 나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같았다내가 이렇게 외롭고 힘든데 타지에서 신선한 도전을 하는  사람이 야속해서 알아줬으면 하고 아기처럼 응석부리다가도 지금 같은 시대에는 독립적으로 살아갈  알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모래성을 쌓다가 망가뜨렸다가작은 자취방 안에서 여러가지 자아를 만들어냈다그저 시간을 벗삼아 흘러가듯 내버려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음에도 시간을 벗을 삼는 일이란 한없이 어려웠다

 

" 몸 건강 잘 챙기구. 아프면 안되요.(보고싶어)."

" 점심 저녁 잘 챙겨먹어요.(보고싶어). "

" 잘자요. 오늘 하루도 정말 고생 많았어요.(보고싶어). "

" 보고싶어."

 

 내가 없었던  사람의 시간들이 어땠었는지어떤 것을 물어봐야 할지 선택할  잠시 시간이 작은 덩어리로 뭉쳐지면 밀어내듯이 하는 , '보고 싶어'. 메신저에서의 우리의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그냥 담백한 네모가 되어갔다 설레고 싶은데어떤 모양인지 짐작이 안되었으면 좋겠는데네모지다고 해서  사랑하는  아닌데보고 싶다는 말의 무게가 가벼워질까봐 무서웠지만그렇게 그렇게 시간의 초침을 한톨 한톨 묵묵히 밀어낼 뿐이었다.

 

' 나도 표현하는 것보다 더 힘들긴 해. 하지만 이걸 다 이겨내야 지겹도록 행복하게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내가 널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건 정말 행복한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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