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반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나한테는 이 문장을 쓰게 될 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반년 동안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살면서, 내 마음과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는 떨어지고 난 처음처럼 많이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루한 기다림을 기록해봤자 묵직한 결과를 던져내는 일이 더 짜릿하고 즐겁기 마련이니까. 반년 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느끼고 살았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서로 많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버텨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사람이 언제 처음 나한테 '미국에서 함께하자.'라고 했는지 기억하지를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프러포즈라는 시작점은 없었다. 정신 차려보니 묵묵히 함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 엄마 아빠는 언제 결혼이라는 걸 준비하기 시작했어? 아빠가 프러포즈할 때 뭐라고 했었어? "
" 그런 거 없어. 그냥 정신 차리고 보니까 당연한 것처럼 결혼했다니까. "
" 에이 거짓말. 말하기 쑥스러워서 그런 거지? 그런 게 어딨어. 손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시작이 없는데 어떻게 같이 준비라는 걸 할 수 있냐. "
" 진짜야. 너도 지나고 나면 다 알게 될걸? "
" 아냐. 그런 거는 엄청 크고 화려하게 받았어야지! 나는 굳이 결혼을 해야 한다면 꼭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고 싶은데. "
나도 기억이 안나는 마당에 어차피 지나간 거라면, '멋있게' 내가 먼저 하고 싶었다. 처음에 그 사람에게 먼저 알아가자고 말 걸었던 사람도 나였다. 이왕 내가 시작한건데, 좀 멋있게 말해버리면 어때.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느닷없이 대학생 때 친구들이랑 함께 놀러 갔던 신촌의 어떤 칵테일바에서 마셨던 코스모폴리탄이 생각났다. 어스름한 초저녁에 갔던 그 칵테일바에 사람이라고는 우리랑 젊은 남녀 커플이 전부였는데, 예고도 없이 조명이 다 꺼지더니 양해를 구한다면서 그랜드 피아노를 치면서 세레나데를 불렀던 어떤 이름 모를 아저씨가 있었다. 철없던 우리들에게는 때아닌 재미난 안주거리였다. 결혼에 다소 시니컬했던 나는 어차피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나중에는 기억도 못할 텐데 저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게 몇 년 후 내 벤치마킹이 될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진짜 밑도 끝도 없이 전자 피아노를 주문했다. 프로포즈용 곡 하나를 위해 학원비를 낼 바엔 싸구려 전자피아노를 사서 퇴근하고 언제든지 연습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아이유처럼 감성에 부서질 것 같은 목소리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그런 끝내주는 순간을 그렸다. 게으른 내게도 혼자서 악보를 찾아 뽑고, 유튜브로 연주 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는 능력은 있었다. 그 사람이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올 때까지 매일매일 연습하겠다던 처음의 목표는 10퍼센트도 채우지 못했지만 어쨌든 몇 톤쯤 되는 줄 알았던 내 손가락이 움직였던 건 사실이다.
프로포즈용 곡은 ‘First of May.’라는 곡으로 정했다. 언젠가의 데이트 끝 무렵,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흘러나왔던 음악이다. 오그라드는 제목이었지만, 그때 차안에서 들었던 그 노래는 빈티지한 팝송 이름처럼 있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몇 번을 삐걱삐걱 연주해봐도 그때 그 느낌이 묻어 나오지가 않았다. 마음은 당장 데뷔가 가능한 아이유였는데 연주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고 나니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유치원생의 재롱잔치가 따로 없었다. 계획이야 아무한테도 말 안 했으니 집어치우고 없던 일로 하면 그만이지만 여기서 그만두긴 뭐했고, 그동안 해온 게 아까우니 '나 요즘 혼자서 장하게도 이거라도 했다.'는 증거가, '이런 취미도 즐길 줄 아는 여자'라는 타이틀이 고팠다. 아직 그 칵테일바에 예약도 안했는데, 그 사람이 돌아오려면 한달은 더 있어야 하는데. 누가 봐도 완성되지 않은 성격 급한 나의 독주회 영상은 그렇게 인터넷을 타고 곤히 잠든 그 사람의 아침을 깨웠다.
" 이거 무슨 노래야? "
" 오빠가 아는 거야. 좋아하는 노래, 맞춰봐."
" 트와이스 노랜가? "
"....... "
" 뭔가 노래도 흥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잘 안들렸어. "
보내기 버튼을 누를 때만 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발가벗은 것처럼 얼굴이 뜨거웠다. 이럴 땐 얼굴을 볼 수 없는 먼 곳에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잔뜩 심술이 난 나는 괜히 메시지에 일부러 답장도 늦게 했다. 내가 정말 무슨 정신으로 그런 짓을 했을까. 그 후론 책상 위 전자피아노가 너무 부끄러워져서 쳐다볼 수 없었다. 결국은 그 사람이 한국에 오기도 전에 새 주인에게 입양 보내버렸다. 생각했던 것처럼 깜짝스러운 이벤트도 아니었고 나는 '이런 취미도 즐길 줄 아는 아이유 같은 여자 친구'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흑역사 갱신이었다.
아직도 남편은 그때 이야기를 하면 큰소리로 웃으면서 미안해한다. 별로 미안해할 것도 없는데 그게 ‘프로포즈 비스무리 한 것(?)’이란 걸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나보다. 사실 내가 듣기에도 동영상 속의 나는 참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같이 보여주려고 준비했던 영상 편집을 잘못해서 자막이 거의 보이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나의 화려한 프러포즈 대 서사시는 '그러려고 했었어.'로 간단하게 마무리 지어졌고, 나와 그 사람은 백만 송이 장미도 풍선이 튀어나오는 예쁜 뒷트렁크도 없이 우리 부모님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고야 말았다. 아, 남편과 결혼하기 며칠 전날 밤, 멋진 야경을 보면서 함께 식사를 하기는 했다.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깜짝 프로포즈’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이야기만 하면 그 사람도 나도 줄곧 웃다가 끝난다.
"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 "
" 응. 나는 지금도 니아빠보면 옛날 생각도 나고 설레고 하는데?"
그까짓 오그라드는 프러포즈 한번 안 했던 우리 부모님은 결혼생활 3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한다.'라고 겸연쩍게 이야기하신다. 그래, 나도 우리 부모님의 따뜻한 결혼생활을 닮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유난스럽지 않게, 서로 어떤 단계를 표현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처럼 편안하고 사랑스럽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