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9일차 출근 - 단단하게 묶어진 지폐다발, 이것은 퇴근

형님들 안녕하세요~ 신입행원 김감자 계장보입니다. 흔히 제게 물어보는 질문은 다음과 같아요. 왜 이 인간들은 오후 네 시에 문을 닫는가. 퇴근을 하는지 파티를 하는지 무엇을 하는가.

그 전에 제 업무가 무엇인지 한 번 맞추어 보세요. 빳빳하고 쾌쾌한 지페 그 특유의 곰팡이 향기, 그리고 마치 언제까지 나뒹굴것인가 동글동글짤랑짤랑거리는 동전의 소리. 저의 보직은 모출납입니다. 저희 지점의 모든 돈을 맞추어 전산과 실제 돈을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마감 작업입니다.

오후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 기도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한 번에 시재가 일치, 즉 전산과 실제 금액이 일체가 되어 퇴근의 뜻을 이루게 인도하소서, 이 성스러운 작업 행위는 퇴근까지의 단 두 시간, 촉박합니다. 금고의 들어있는 돈은 다 합치면 평균 사억에서 육억 정도 되고, 센터 정도 가야 몇십 억씩 들어가 있어요. 왜냐하면, 실제 금액인 시재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한국은행 등에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충격적이죠? 심지어 지점 금고 털어도 아파트 하나 못 산다는 게 더욱 에브리바디 쇼크죠, 아무튼! 형님들이 금고를 털고 싶다면 좀 큰 지점이나 센터를 침입하거나 부수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래도 그 몇 억을 계수기를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맞추는 일을 제가 합니다.

수도권 대장 아파트 신발장만도 못 한 시재를 맞추는데 왜 네 시에 문을 닫는지 이해를 못하는 큰 형님들이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세스를 간략히 말씀드릴게요.

네 시가 되자마자 딱 에이티엠 기계의 돈을 싹 다 빼고 마감을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급해도 형님들은 메너상 네 시는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걸린 돈이랑 수표도 싹 다 빼고 새로 돈을 넣어요. 기계는 회사마다 기종마다 달라서 쿵짝쿵짝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한 기계당 천만원에서 삼천만원 이상 들어가고 충격과 공포의 초록괴물 만원 지폐도 많습니다.

그 동안 다른 직원들의 시재를 맞추고 동전도 빙글빙글 돌려가며 묶어제낍니다. 헬창 형님들은 십키로 이상의 동전 주머니를 들 때 스모 스쿼트를 매일 한다는 생각을 하시면 허벅지가 벅차오를 겁니다. 또한 손상된 지폐가 있으면 테이프질도 하고 제 책상에 있는 시재들도 차곡차곡 계수기 불나도록 열심히 돌려 맞춥니다. 외국 화폐는 안 맞으면 돈도 못 구해서 손에 땀을 쥐게 하고요.

만일 이 글을 읽는 형님 중에 신입 형님들이 있다면 애도를 표합니다. 보통 처음 지폐를 묶는 연습이 덜 되었고 돈을 어떻게 맞추는 지 전산 프로세스를 모른다면..... 밤 아홉시가 될 지 열시가 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고라니와 부엉이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는 수신팀장님의 이를 갈고 신음을 하는 소리와 다름이 없습니다. 직장 선배님들의 따가운 레이저 눈초리는 지폐를 모조리 태울 심산이죠. 그냥 지폐를 불사지르고 어머 시재가 맞네요 말했다가는 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마감 결과가 틀렸다~ 그러면 이제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가 시작합니다. 원인을 찾아야 해요. 저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쫄린 대역죄인의 자세를 가집니다. 자기방어 기제로 잘못이 없습니다~ 몰라 알 수가 없어~~ 마음에서는 유격훈련 악 소리로 목이 쉬도록 외치고 싶지만, 시씨티비를 돌리면 범인은 제가 맞습니다. 주로 통장을 바꾸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현금 입금을 안 했다던지, 아니면 지폐가 계수기에서 튀겨 나갔거나 정신 없어서 고갱님께 원뿔러스원 뽀나스로 더 드렸던지 등등 말이죠. 돈이 모자라면 제 작고 귀여운 호주머니에서 개인 돈을 꺼내는 경우도 있지만.... 돈이 남으면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저의 느린 마감 업무로 인해 밤 여섯시를 넘어 시곗바늘이 폭주기관차로 아홉시 열시가 되도록 기다리는 선배님들에게 죄송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빠르게 마감하는 기적을 익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먼저 한 몇십 번 이상을 하는 지폐를 종이 띠지에 묶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나는 지폐를 묶는 로보트다 띠리리리 심정으로 휴일에도 손에 힘 꽉 주고 타임어택을 하면서 돈을 묶었습니다. 물론 천 원짜리 한 뭉치로요. 백만원 없어요. 나름 딴딴하게 쪼여서 묶는 지폐뭉치를 세차게 바닥에 내던질 때 흩날리는 천 원 푸른 지폐를 보면, 덜 묶였구나 하고 푸른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곧 인간 업무시스템이며 시재 컨트롤러라는 마음으로 사용하는 화면을 즐겨찾기하고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오른손으로 조정간 아니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통상 피시방에서 하는 행동과는 반대이지요. 나는 뛰어난 게이머이고 이는 전략 플레이다 생각하고 초시계를 두고 승리하는 마음으로 하엿습니다. 이게 월급을 받는 서바이벌이죠.

무엇보다 고객님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메모를 하엿습니다. 적기보다 타자가 손이 더 빨라 메모장 하나 켜 두고 고객님 흉내까지 내면서 적었더니, 적어도 싱크홀처럼 매몰되며 아차 죄송합니다 하면서 빼먹는 일도 없엇습니다.

이 출납의 최고의 장점은 , 매일 시재를 맞출 때 마감의 카타르시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딱 모든 돈이 전산의 그 원수같은 숫자와 맞을 때, 적장 한 가운데 쳐들어가 승리의 깃발을 꽂은 장군의 태세로 팀장님께 결재를 올립니다.

그러므로 형님들은 오후 네 시경에는 에이티엠 이용을 자제해 주시고, 너무 일찍 문 닫는 거 아니냐고 묻지 말고 쉽고 편리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고, 은행을 털고 싶다면 저희 지점 말고 돈 많은 센터에 가주세요. 지페다발처럼 쫀쫀하고 촥촥 묶어서 빠르게 집에 갈 거에요~ 퇴근 가보자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8일차 출근 - 나에게 카드를 추천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