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 문과출신 N잡러 이야기
해고통보를 받은 날부터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제 다시 구직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 이상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물론 지금의 회사와 싸워볼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이 HR 업무를 해왔기에 이런저런 사유로 승산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낮은 확률이지만, 저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 해도 유명무실했습니다. 그러니 이직에 힘써야 할 정신과 체력을 현실적으로 의미 없는 일에 투입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았습니다. 뭘 해야 하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새벽배송을 해볼까?
최근에는 일부러 다른 이들이 모두 잠든 이후의 새벽 배송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새벽에 일하는 것은 나름대로 장점이 많았습니다. 낮과는 달리 도로가 한산하니 막힐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빠르게 여러 건의 배송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저는 한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성향이기에 모두가 잠든 이후의 한적한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은 나름 운치도 있다고 봅니다. 이미 새벽 배송으로 나름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사례들도 회자되고 있었기에 새벽배송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새벽에는 배송을 하고 (오전 취침 후) 오후에는 구직활동을 하면 어떨까?
하지만, 단점이 있었지요. 저에게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정반대의 시간을 살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만약 독신이었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가족이 있기에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새벽배송과 오후의 구직활동은 그럴싸하게는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은 낮았습니다. 여러 기업과 소통해야 하기에 구직활동을 오후에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족하고 불규칙한 수면은 운전을 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4말 5초의 남자백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재주도 없고 나이도 많기에 대리운전이나 새벽배송 외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해고 통보 당일에 새롭게 요청받은 강의가 있으니 일단 다음 주까지는 강의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반나절의 짧은 강의이긴 했지만 시간당 강사료가 제법 되기도 했고, 또 다른 강의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새벽배송은 일단 만약을 위한 플랜 B로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