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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유난히 더웠던 2024년 여름

49세 문과출신 N잡러 이야기

by Kay

온난화의 덕분인지 어느 새인가 여름이 아주 더워졌습니다. 저도 나름 더위를 잘 버티는 축에 속했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여름 나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수능이네요. 아직도 극악의 여름으로 손꼽히는 1994년 여름, 전 당시 고3이었습니다. 덩치가 산만한 남자들이 50명이 넘는 교실에 선풍기는 고작 3대였습니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조차 품귀여서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고3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더위는 참으로 무서운 방해꾼이었습니다. 남고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학교에서는 속옷바람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반 벌거숭이 모드’를 암묵적으로 허용했습니다. 남자 선생님들은 아예 대놓고 본인의 수업시간에는 하의 속옷만 입어도 된다고 하셨지요. 물론 여자 선생님들께는 최대한의 에티켓을 지키긴 했습니다.



작년 2024년의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에는 얼음밖에 없었습니다. 백수라는 저의 상황이 온몸에서 땀이 나면서도 마음에는 얼음이 맺히도록 만들었나 봅니다. 해고 통보를 받은 날, 우연하게 제안받은 2회의 강의를 하고 나니 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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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하루 종일 포지션 검색에 집중했습니다. HR 혹은 인사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름 많은 수의 포지션이 검색되었지만, 경력(으로 표현된 나이 제한)과 지역, 타 업무와의 겸직 등을 고려하고 나면 제가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하루 종일 검색하다 보니 더 이상 새로운 포지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옛날 제가 좋아하던 노래에 나왔던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끝없는 기다림에 이제 난 지쳐 가나 봐.


노래 가사 그대로였습니다. 끝없는 검색과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 그리고 기약 없는 기다림. 구직자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기한이 정해져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참아볼 텐데 언제 끝이 날지 모르기에 전혀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뭄에 단비 소식처럼 연락이 왔습니다. 저에게 강의를 제안주신 교육 스타트업의 담당자분이셨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전화 한 통으로 저는 2개월 더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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