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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심 Aug 06. 2022

표현의 한계를 문맥으로 뛰어넘을 때

문맥이 있고 없고의 경계에서

"밥 먹었냐?"


라는 물음을 밥먹듯이 듣는 것이 정말 싫었었던 적이 있다. 나의 생물학적 생존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숨이 붙어 있는 것보다 그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더 고민하던 시기였다. 내가 대학에 진학했을 때도 취업준비로 바쁠 때도 늘 똑같은 질문이었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어떻게'에 대한 질문은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물론 내가 알아서 그 마음만 받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반복된 물음이 질문자의 언어의 한계이고 나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한계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나처럼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나고 자란 시골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으니 말이다. 그때는 나를 낳아준 사람보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L.Wittenstein) 아저씨 말에 더 공감했다.


하지만 언어의 한계에 갇힌 것은 바로 나였다. 질문하는 사람의 문맥(context)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일 나의 문맥(context)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뿐이었다.



나의 생존을 걱정하신 분은

굶어 죽는 것을 염려하던 시대의 사람은 아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었으면, 차라리 그 물음과 염려가 쉽게 이해되었을 것이다. 왠지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한결같이 생존 그 자체에 몹시 집착하셨던 것 같다. 큰 수술의 후유증에 타고난 예민함이 더해 늘 아프다고 말했던 것도 어린 시절 나는 그냥 넋두리인 줄 알았다.


어른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 비로소 그 넋두리가 약간 이해되는 정도였다. 그리고 밥을 통해 나에게 일관되게 전하고자 했던 말도 조금 이해되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말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욕심 많고 꿈 많은 시기라 무엇을 이루어야 할지 고민하던 때였는데, 이 말이 나를 주저앉히는 것 같아 싫었다.



내가 동경하던 이의 때 이른 죽음이

나의 문맥을 만들었다


한창 내가 꿈을 좇을 때, 동경하던 사람이 어느 날 명을 달리했다. 갑작스러웠다. 사실 그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꿈을 이루면 다다를 마지막 정거장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숱하게 목격했던 죽음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느꼈던 그리움과 회환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 일이 있고 늘 뭔가에 홀린 듯 살던 나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 후부터 꿈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좇고 있던 것들이 예전만큼 큰 의미를 갖지 않았다.


내가 좇던 많은 것들도 그 사람과 함께 땅에 묻힌 것 같다. 그 사람이 이룬 것을 동경했던 나는, 죽으면 그가 이룬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것을 봤다. 내가 그동안 고민하던 '어떻게' 사는지는 무의미한 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나의 문맥도 만들어졌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의 생물학적 생존을 걱정해주는 말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오랜 시간이 흘러 나에게 전달되었다. 질문자의 문맥이 이해되고 나의 문맥이 완성된 후 비로소 이심전심으로 통하게 되었다.



 

검은 사각형 (blakc square) - 카지미르 말레비치


대가의 그림이 내 눈에는 '표현의 한계'로 보인다. 네모난 액자에 까만 그림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니 작가와 나는 서로 통할 수 없어 보인다. 그 탓을 작가에게 돌린다. 나에게 그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싼 그림일 뿐이다.


내가 이 작가의 문맥을 이해하는 순간, 표현의 한계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다 표현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더 납득할 것이다.




나는 어떤 문맥을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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