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지루하지 않길 바랍니다
바쁜 일상에도 사람은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하니,
내가 요즘 그렇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 나의 일상이 편해진 것이라고 뭐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치열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로서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허투루 삶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함을 느낀다.
지루함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들에 대한 얘기들은
나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한 그런 것들로 위안을 얻을 수도 없었다. 나의 부정 본능은 지루함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게 한다. 어느 평론가의 다소 황당한 말이 요즘에 조금 납득이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지루함때문에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루함은 자극이 없는 상태 혹은 ‘무의미한 방치’라 불린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은 분명 고통이다. 우리의 몸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성실한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삶의 태도로 인해 지루함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또한 지루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열망이 강할수록 그 고통은 더욱 증폭된다.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비약이 심한 말이다. 하지만 지루함이 말해주는 ‘무의미한 방치’는 삶에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수명이 줄어든다. 이것은 과학이다. 장수마을에 가면 노인들이 내일 할 소일거리가 있어 더 건강하다고 한다. 또는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사람은 남겨진 가족을 염려해서 생에 강한 애착을 지녀 상대적으로 오래 산다고 한다.
역병 이후에 특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지루함을 호소하는 것은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아왔다는 증거이다. 재미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으면 지루해진다는 말이다. 나의 존재를 보증해줄 주변 사람이 없으면 내 삶은 무료해지는 것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지루함은 외로움과도 닮은 것 같다.
시작이 열정적인 사람들: 처음에 강한 자극을 느끼고 금방 열정이 식는 사람들이다. 열렬히 사랑하다 상대에게 싫증을 느끼는 사람과 비슷하다. 즉 ‘금사빠’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다.
창의적인 사람들: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반복된 일상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반복되는 상황에서 쉽게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의미에 중독된 사람들: 지나치게 의미를 찾다 보면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것들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무의미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단계라면 극복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의미를 찾다 보면 의미를 분별하게 된다. 즉 의미에 순위를 매기고 낮은 순위의 일을 할 때 특히 더 지루함을 느낀다.
모험을 원하는 탐구형 사람들: 늘 새로운 자극과 모험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주기적으로 환경을 바꿔줘야 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직장과 주변 사람을 자주 바꾸고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특정분야의 전문가들: 날마다 놀라운 발견이 넘치는 분야가 아니라면 그 분야에 정통할수록 지루함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이룬 업적도 너무 작게 느껴지고 그것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욕심을 없애려 하는 수행자들: 욕심을 없애면 마음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무엇인가를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쉽게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내가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는 이유는 의미 중독과 특정 분야의 일을 오래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루함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실한 우리는 지루함마저 노력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못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노력을 들이지 않는 활동으로 시간을 때워 지루함을 해소하려고 한다. 게임, TV 시청, 핸드폰, 사람 만나서 놀기 등을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나마 만나기 위한 노력을 했으므로 좀 나은 편이다. 새로운 시도조차 하기 싫은 경우가 보통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딴짓하기
:일생을 딴짓하고 혼난 기억이 밖에 없다. 성실한 우리는 너무 열심히 살기 때문에 지루한 것이다. 틈틈이 딴짓을 좀 해야 한다. 본업에 지장 없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딴짓을 해야 한다. 딴짓해도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루함을 느끼는 직원이 많으면 망할지도 모르겠다. 3M이라는 회사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20% 정도의 시간을 딴짓을 하도록 업무시간에 허용해준다고 한다. 보통의 직장은 이런 호사를 누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잘 찾아보면 요령껏 딴짓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은 변화주기
:일하는 순서를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일이 많아 바빠져서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업무를 하는 것은 더더욱 싫을 것이다. 어차피 하는 일 거꾸로 해보고 반쯤 누워서도 해보고 온갖 기발한 방법으로 평소에 하던 일을 색다르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옆사람이랑 잠깐 자리를 바꿔서 일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틈틈이 계획 짜기/메모하기
:업무에 관련된 계획일 수도 있고, 여행 계획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인생계획을 수립하거나 자녀계획을 짜는 것도 좋다. 계획을 짜다보면 보통 욕심이 생기게 된다. 욕심은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에너지를 우리에게 준다. 그리고 뭐든 좋으니 종이에 끄적여 보자. 적은 노력을 들여 메모를 하다 보면 마음을 끄는 것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재난 영화 보기/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상상해보기
: 현재에 만족해서 감사하라는 식상한 말보다, 재난 영화 한 편을 보면 삶에 긴장감이 생길 것이다. 저절로 현재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또는 내가 갑자기 세상에서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도 가끔 해볼 만하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은 크게 노력을 들이지 않고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남들도 지루하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자
: 남들은 모두 화려한 삶을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모두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나 티브이 속 사람들만 보다 보니 무미건조한 우리의 삶이 더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뭐가 재미있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술술 얘기하는 사람 별로 못 만났다.
새로운 사람을 '책'에서 만나기
: 옷 입고 신경 써서 밖으로 나가 타인을 만날 정도면,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거나 사람을 만나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노력을 할 만큼 에너지가 없다면 새로운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나는 것도 좋은 대안일 것이다. 아니면 인터넷 상의 어떤 사람을 추앙하는 것도 좋다. 대신 스토커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건강하게 해야 한다.
운동이나 산책을 통해 에너지 얻기
: 제대로 지루함과 권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루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뿐이다. 물론 머릿속으로 동기 부여하는 것도 좋지만, 몸을 움직이면 세로토닌도 얻고 의욕 에너지도 얻을 수 있다. 그 에너지로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을 케어하기/ 봉사활동
: 봉사활동에 시간을 쏟을 정도의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다면 웬만하면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들이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다고 한다. 습관이 되면 봉사활동을 해서 정신이 건강한 것인지, 정신이 건강해서 봉사활동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남을 케어하는 것만큼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는 길은 없다.
" 우리가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식물이 시들어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영양분을 줘야 하는 신호로 지루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지루함이 고통이 되는 이유는,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으면, 목표 자체가 욕심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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