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긋기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착한 사람들
선긋기가 유행하자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편한 대로 인간관계에 다양한 선을 긋기 시작했다. 선긋기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은 어쩌면 선긋기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어울려 사는 세상에 비록 보이지 않지만 숱한 선들이 어지럽게 그려지는 것이 못마땅할 것이기 때문이다. 착하고 여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어보기로 한 그 선들이 어떻게 그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어졌다.
*복선(실선 + 점선): 한쪽에서 넘을수 있고, 반대쪽에서는 못 넘어온다. ‘내로남불선’이다.
1. 내로남불의 선긋기 하는 사람들 (복선: 실선+점선)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항상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선긋기마저 자기 좋을 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이익을 늘리는 쪽으로 악용한다. 남이 자기 비위에 거슬리면 '선을 넘었다'는 둥 '예의가 없다'라는 둥, 말하며 선긋기를 시연한다. 하지만 자신이 선을 넘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에 대해 한없이 관대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혹은 '뭘 그런 걸 갖고, 그렇게 속이 좁아서 사회생활 어떻게 하려고' 등의 뻔뻔한 말로 상처받은 사람을 오히려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한다.
2. 천부적인 선긋기 능력 보유자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선긋기를 잘하는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할 말 잘하고 거리 조절을 잘해서 '선긋기'가 고안되기 전에도 이미 탈없이 잘 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십 분 발휘하여 자신의 이익을 잘 대변해왔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에게 굳이 선긋기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자신이 평소에 해오던 것들에 '선긋기'라는 용어가 붙은 것뿐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이 손쉬운 단어로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그 덕에 좀 더 마음 편하게 하던 대로 계속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3. 선긋기 능력이 꼭 필요한 사람들
착한 사람들
늘 손해 보는 사람들
예민한 사람들
내향적인 사람들
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선긋기를 해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잘 어울려 살아야지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에게 상처받아도 타인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선한 마음을 갖고 있고 또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런 사람들은 남과 자신 사이에 선긋기를 할 생각을 하면 불안한 마음이 들고, 외로움마저 느낀다.
1) 자신이 그은 선이 자꾸 지워진다.
착한 사람들은 선긋기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면 그은 선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지워지거나, 아니며 선이 얇아져서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매번 확인하고 새로 그어야 한다. 이 번거로움과 동기 부족 때문에 선긋기를 유지하기 힘들다.
끊임없이 자신이 선긋기를 한다는 생각을 셀프 리마인드 해야 한다. 그리고 선긋기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내려놓기 위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어야 한다. “선을 긋자!, 선을 긋자!”라는 식의 자신만의 문구를 만들어 반복적으로 떠올려야 한다. 선을 긋는 현실에 슬퍼지면, 많은 사람들이 선긋기를 한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자!
2) 점선 혹은 혹은 가는 실선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한다.
실선이나 이중 실선을 그어야 할 판인데 점선을 긋는 경우가 생긴다. 마음이 약해져서 그렇다. 가족에게 그을 점선을 의리 있는 친구와 가족 같은 동료라는 미명 아래 타인과의 관계에서 점선을 긋게 된다.
이것들은 심성이 착해서 선을 관대하게 긋게 되는 것이다. 원칙을 세워 상황에 맞는 선긋기를 해야 한다. 타고난 마음이 그러한데 관대함을 잃기 어려울 것이다. 미래에 닥칠 고통을 막는다는 생각으로 강한 마음을 먹자!
3) 선을 넘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이미 마음 상한다.
특히 예민한 사람들은 상대의 의도를 너무 잘 알아차린다. 이것이 축복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타인의 뜻 없는 행동과 말에 과민 반응할 수 있다. 선을 넘지 않고 주변에 얼쩡거리는 것에도 반응을 보이게 된다. 마치 과잉 진압하는 경찰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나쁜 의도를 갖고 말과 행동을 할 경우가 있고, 때로는 상대가 의식하지 못하고 그러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은 상대가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도 나쁜 의도를 갖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예민함은 숨은 의도를 찾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이 예민하다면 이 두 경우를 잘 구별해서, 상대의 나쁜 의도는 꾸짖고,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했을 때는 주의를 줘야 하는 것이다.
4) 선을 넘어오면 대응하지 못하고 상처받는다.
넘어온 사람에게 경고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상처를 입는다. 평소에 선을 긋지 않을 때도 비슷한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선긋기를 의식한 뒤부터, 자신이 그은 선을 사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든다. 오히려 고통이 가중된다.
상처받고 움츠러들지 말고 선을 지키도록 상대를 밀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초등학생 시절 책상에 선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마음이 여린 짝꿍은 선을 넘으면 아무 말 없이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반면에 씩씩한 짝꿍은 끊임없이 선을 넘지 말라고 말해줬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의도를 갖든 실수로든 선을 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5) 선을 긋다가 벽을 친다
선긋기 할 때 남에게 함부로 웃어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게 대체로 맞다. 하지만 그러다가 상냥함마저 잃을 수 있다. 착한 심성과 다정함을 숨기고 하루 종일 도도한 사람 흉내를 내야 하는 것이 힘들 것이다. 도도함에 타인들은 오해하고 애초에 선을 넘을 생각도 않던 사람들도 착한 당신을 멀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선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어떤 종류의 선을 그었는지는 선을 넘었을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에 따라 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