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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심 Aug 04. 2022

지루한 드라마를 참고 보는 이유

섬세한 나의 지친 하루 휴식법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드라마는 신선한 이야기와 입체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반복되고 건조한 우리의 일상을 촉촉하게 해 준다. 덕분에 평범한 우리의 하루마저 특별해지는 기분이 든다.


"드라마는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인생이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히치콕 감독의 말에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지루함을 느껴서 자신을 괴롭힐 생각이 아니라면, 따분한 드라마를 참고 볼 이유는 없다.  


지루한 드라마를 보게 되는 경우

- 새로 시작한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 지루한 드라마인지 모르고 '재미있어지겠지'라며 참고 본다.

- 보던 드리마에 대한 의리: 첫 몇 화가 재미있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지루해졌다.

- 정말 볼 게 없는 경우: 다른 것을 찾는 것이 더 귀찮다.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지루한 드라마를 본다. 하루 동안 감정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거나 사람들한테 치였을 때가 그렇다. 지루한 드라마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지루한 드라마는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진부한 스토리라인들로 채워져 있어, 잠깐 딴짓을 하고 봐도 무슨 내용이 전개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친절하게 일일이 설명해준다.


지루한 드라마가 주는

작은 위안들


1. 사소하고 불쾌한 일에

딱 알맞게 집중하도록 한다


재미있는 드라마는 집중해서 봐야 하지만, 지루한 드라마는 보면서 딴생각을 할 수 있다. 낮에 내 기분을 상하게 했던 일을 드라마를 보며 떠올리기도 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심한 말을 나에게 했지?’하고 생각한다. 낮에 느꼈던 감정이 몰려오지만 그때만큼 강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의 집중력이 드라마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좀 차분해진 감정으로 불쾌했던 순간을 돌이켜 생각해볼 수 있다.


낮에 있었던 일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하루의 끝에 어떻게든 그 일을 떠올려 정리를 해야 한다. 마치 숙제와 같은 것이라서 이 숙제를 끝내지 않고는 내일을 편하게 시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일기를 써도 좋지만 사소하고 불쾌한 일에 그만한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그 일을 떠올렸다면 좀 더 감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지만, 지루한 드라마는 딱 적당한 만큼만 그 일에 집중하게 해 준다.


"불쾌했던 한낮의 감정을 지루한 드라마와 버무려 등 뒤로 던진다."



2. 민감한 나의 감각에

휴식을 준다.


몸이 바쁜 날은 그래도 괜찮은 하루다. 마음이 지치는 날은 제대로 된 휴식이 필요하다. 나의 섬세함은 남과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도 남들보다 더 피곤함을 느끼게 한다. 나의 뇌가 쉴 수 있도록 자극을 줄여주고 싶을 때, 지루한 드라마만 한 것이 없다. 사실 예전에 봤던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 것도 좋지만, 재미있는 드라마는 다 아는 내용인데도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든다.


지루한 드라마는 신선함은 없지만 나에게는  맞는 배경음악이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 떠들고 있을  느꼈던 어수선한 기분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에 나는   구석에서  소리를 배경 삼아 장난감을 갖고 놀곤 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안정감이 좋았다. 그리고 적당한 볼륨의 소리와 무의미한 대사가 의 놀이를 방해할 정도아니었다. 지루한 드라마가 어른이  나에게 그와 같다.


"지루한 것은 괜찮지만 지루함을 느끼는 것(감정)은 고통이다"




지루함, 감정의 기능


지루함: 할 일 없는 무관심한 상태와 감정(위키)/ 뇌에 자극이 없는 상태(뇌과학)/ 무의미한 방치(철학)


모든 감정들의 기능은 감정을 통해 행동 에너지를 얻는 데 있다. 그 에너지는 우리를 더 나은 상태로 가도록 돕고 감정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무의미한 방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다.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자극을 통해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던 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지루함이 창의력을 높인다는 긍정적인 기능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불현듯 찾아온 지루함을 반겨야 하는 이유다.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섣불리 해소하기보다는, 평소에 하지 않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지루한 드라마처럼 ‘지루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만 말에 영양가가 없다. 대화를 나눌 때 상대가 의미 있는 개입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마치 진부한 드라마에 우리의 기대와 상상이 개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친 하루의 끝에 맞이하는 꿀 맛 같은 휴식이 좋다.





커버이미지출처:lifeha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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