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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심 Jul 31. 2022

너와 나의 거리는 10,751 km

10여 년 만에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예전에는 그 친구와 많이 가까웠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다. 함께 만든 추억도 많아 둘이 찍은 사진들로만 사진첩 하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타지로 옮겨가 살기 시작하며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게 서로의 존재가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 후로 딱히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도 곁에 두지 않았고, 따로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에만 오로지 집중했고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부족했던 터라 선택과 집중을 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에너지를 쓰는 대신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또 마음 한편에 미완의 나를 남에게 내보이기 싫어서 움츠린 것도 같다.


며칠  친구의 연락처를 어렵지 않게 알아내어 내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는 겉으로 반갑다 말했지만 갑자스런 나의 연락에 너무 의아해하는  같았다. “네가 웬일로?”라는 느낌이었다. 마치 나를 보험외판원 대하듯 나를 대했다. 무엇이 필요해서, 아니면 앞으로 있을 경조사 때문인지 궁금해하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흔한 문자메시지조차 보내지 않고   세월을 지냈으니 서로에게 의미 없는 관계라 친구가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친구의 그러한 마음과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기분이 좋았고  년을 스킵하고도 이어갈 만큼 좋은 인연처럼 느껴졌다.


내가 느낀 설명하기 힘든 너와 나의 온도 차이는 뭘까?



우주여행을 

다녀온 


지구를 떠나지 않고도 우주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각자의 시간은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 듯하다. 나의 10 년은  누구와도 가깝게 교류하지 않고 단절된 생활이었다. 진공상태라 불러도 좋을  십여 년의 세월을 잘라내고 앞뒤를 이어 붙이면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다. 그래서 마치  년처럼 짧게 느껴진다. 친구는  세월을 그대로 음미했을 것이다. 내가 없는 삶을 살았고  친구에게 나란 존재는 그저  추억 같았으리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맞지 않다. 어떠한 핑계로도 소식이 없던 나의 십 년을 친구에게 납득시킬 수 없다.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데 큰 노력이 들지 않기에 그러하다. 옛날처럼 전서구나 봉화를 띄우는 것도 인편에 편지를 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비난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애초에 내가 그리 만들었으니까. 나의 부재는 너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말이고 공감이 없는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이다.


무슨 대단한 일을 했길래 그랬을까 싶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남들도 많이 하는 흔한 일이었고 유난을 떨 일도 아니었다.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고도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들 셀 수 없이 많이 보았다. 하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나는 남들만큼 일이 되게 하려면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 했다. 그 일이 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나를 들어내는 것이 무의미하다 느꼈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그 대가가 새삼 자기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소중히 생각해야 할 것을 가볍게 보이게 했으니 말이다.


바늘 하나 꼽을 틈 없이 좁아진 마음으로 여유 없이 십여 년을 보내고 나서 왜 지금 새삼 낡은 사진첩을 들척이나 모르겠다. 사실 3년 전쯤에 우주여행을 마쳤고 그동안 격조했던 친구들에게 내 존재를 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긴 여행 뒤 여독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일에 대한 나의 집착은 일이 되어도 놓아지지 않았다. 역병이 아니었으면 긴 세월에 누적된 피로를 영영 풀 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병 덕에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는 비로소 십여 년 동안 쌓인 여독을 풀고 끊어진 기억을 이어 붙였다.



인싸인 친구


내가  년을 뛰어넘어 친구에게 느낀 친밀감은  자체로 아이러니다. 그동안 모든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았으니 오히려  역설적인 감정이 이해된다. 만약 한두 명이라도 연락을 주고받았더라면  외에 모든 사람들은 내게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주변에 사람으로 가득한 인싸의 삶을 사는 친구는 똑같은 이유로 내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을 테다.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쉬워진 시대에는 물리적 거리는 의미가 없다. 마음의 거리는 너와 내가 주고받은 메시지 수에 반비례할 뿐이다. 그리고 그 거리에 맞춰 간혹 오프라인으로 만나 현실임을 인지하면 된다.



새로운 여정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어 붙이는 . 아니면 그대로 흘러가게 두는가. 어린 시절 마음에 맞았다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유치하다. 이제 서로 달라졌고 각자의 삶이 있으니 말이다. 마음의 거리도 그러하거니와 물리적 거리도 문제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도 좋을 만큼 회복되어 너무 좋다. 이제 진공의 우주여행 말고, 사람들로 가득한 꽃놀이를 갈 테다.


-소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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