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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심 Jul 28. 2022

눈물셀카를 찍어봐야 하는 이유

감정은 분석하는 순간 훼손되나?


혹시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본 적이 있나요?

 아..울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느낌있어…


한 때 소셜미디어를 통해 눈물 셀카가 유행했던 적이 있는 걸 기억하시죠. 많은 연예인들이 울고 있는 자기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죠. 그런 감성 폭발 했던 자신의 모습을 쇼셜미디어에 공유하여 시공을 박제하였지요.


가수 채연의 눈물 셀카 - 출처:채연 인스타그램

눈물셀카와 함께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라는 의미심장한 멘트.


요즘은 누구도 이 오글거리는 '짓'을 더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더라도 숨어서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어 남들이 보는 곳에 올리지는 않을지라도, 자신의 핸드폰에 몇 장쯤 소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울다 말고 거울을 본 적이 있을거예요. 화장이 번지지 않았나 하는 염려 넘어로 거울 속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을 찾고 있던 적은요.


눈물은 다양한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마주하여 슬픔이란 감정에 복바쳐서 웁니다. 또는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감정때문에 눈물이 마구 솟구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싸움의 승패는 눈물로 결정했지요. 그래서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눈물은 나의 패배를 시인하는 꼴이라 남에게 보이기 싫습니다. 특히 상대가 미울수록 입을 악물고 눈물을 참습니다. 너무 싫어하는 상사에게 혼나고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그 상사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예요.


눈물 셀카를 찍는 행위가 우습게 보이는 것은 왜 일까요?

자신의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면서, 나의 감정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옆에 누군가 몰래 찍었다면 아무런 놀림감이 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나와 사진을 찍는 나로 '자아분열'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지요. 그리고 감정을 연기한 것으로 오해 받습니다.


언제 부터인가 감정에 솔직한 것을 추앙하는 분위기 입니다. 감정 억압이 심했던 과거의 긴 터널을 지나 온 탓일 것입니다. 그것도 부족해서인지 개인의 감정을 주변이 공감하도록 강요하기까지 합니다. 몰인정하다는 둥, 소시오 패스라는 둥 온갖 비난을 쏟아 냅니다. 이처럼 감정 존중 사회에서 눈물셀카는 감정 불구처럼 보이기도 하고, 너무나 쉽게 자신의 감정을 훼손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아니면 감정을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이용한 것 마냥 비춰집니다.




눈물셀카를 추천하는 이유

정말 슬픔에 빠져 지금 힘드시다면, 셀카를 찍으라고 권하고 싶네요. 눈물셀카는 어쩌면 고도의 정신 활동일지도 몰라요. 뛰어난 감정 조절 능력을 가진 사람인 것같아요.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에서 한발짝 벗어나 자신을 객관화했기 때문입니다. 감정에 빠져 매몰되기 보다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된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아마도 슬픔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감정에도 잘 빠져 나와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것은 정신상담 전문가들의 견해와도 일치합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을 때, 감정을 객관화하라고 합니다. 눈물셀카를 찍는 사람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누구보다 전문가의 조언에 충실한 것입니다.


감정을 객관화하는 것은 뇌에서 감정회로를 가동하다 이성회로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감정조절 능력이 뛰어난 사람 (=뇌의 사용 부위를 자유롭게 스위칭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물을 총체적으로 보는 안목을 갖춘 리더일 수 있습니다. 혹은 클리쉐를 따라 가다 돌발적 신선함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맨일지도 모릅니다. (유세윤의 눈물셀카)



감정의 기능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

[사고실험] 조금 말이 안되는 상황이지만 한번 쯤 생각해보세요?

감정 조절에 너무 탁월한 능력을 보인 나머지 감정을 느끼자 마자 그것에서 벗어나 객관화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봐요. 이 사람은 주변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므로 문제될 것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주변사람의 눈에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것 같네요. 감정을 얼마나 오랬동안 지속해야 할까요? 하루 이틀 슬퍼해야 할 감정이 따로 있고, 한 두시간 슬퍼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일까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약해지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오는게 좋지않을까요.

남을 의식하여 감정에 불필요하게 더 빠져있지는 않나요?


감정은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감정은 나름에 이유가 있습니다. 슬픔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인정하고 싶지 않을 테지만 기능을 생각해보면 감정에 빠질 것이 아니라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묘하게 설득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서 슬픈 감정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합니다. 헤어진 것이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표출되는 것은 헤어짐으로 오는 손실을 빨리 메꾸라는 메세지입니다.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또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물론 떠난 연인을 못본다는 그리움,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등 슬픔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감정의 뿌리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생존과 관련 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감정]. 슬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생존에 불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별 상황은 나의 생존에 불리하므로 이 상황을 좋게 만들 수 있도록 슬픈 감정이 만들어진 겁니다. 이와 같은 감정으로 행동에너지를 (새로운 애인을 찾을 수 있는) 만들어 생존에 유리하도록 하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습니다.


즉, 슬픔의 기능은 슬퍼하는 자체가 아니라, 슬픔이라는 감정을 에너지로 빨리 슬프지 않은 상황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이제 슬픈 감정이 든다면, 눈물 셀카를 찍어 그 감정에서 벗어나세요. 감정에서 쉽게 벗어나는 능력이 점점 향상되더라도 감정에 허우적 거리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안돼요. 감정에 너무 지나친 의미를 둘 필요도 없고,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안됩니다. 감정이 갖는 기능과 메세지를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테이크 홈 메세지] 감정을 잘 조절하고 빨리 벗어나지만, 타인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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