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쫒는 요리

by 권경덕

늦잠을 자고 일어나 눈도 덜 떠진 상태로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으니 뭐라도 먹어야지, 식의 안일한 생각을 하며 아침 메뉴를 떠올려본다.


이렇게 의식이 흐릿할 때는 역시 볶음밥이다. 팬 위에 오일을 두르고 재료를 볶을 때 만들어지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노릇 노릇한 향은 잠을 깨우고 식욕을 돋군다. 왠지 맨 밥에 소금만 쳐도 군침이 돌 것 같은 기분이다. 어떤 볶음밥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어떤 재료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있는 재료를 긁어 모아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알뜰한 살림의 기본이라고, 어디 써있지는 않지만 혼자 되뇌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특한 일이다.


일단 밥솥에 밥은 있고, 선반 위에 걸려 있는 양파망에는 몇 개의 양파가 남아 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반쪽 남은 당근하고 두부 한 모를 발견했다. 기본 재료는 정해졌다. 밥, 당근, 양파, 두부. 이제 이걸 잘 볶아보자. 두부를 어떻게 조리할까 고민하다가 으깨기로 했다. 칼 옆 면으로 꾸욱 누르니 순식간에 으깨진다. 손바닥으로 누르거나 움켜쥐어도 잘 으깨진다. 손 맛이 첨가되었으니 좀 더 영양 높고 맛 좋은 음식이 만들어질 것 같다. 막연하지만 느낌이 그렇다. 두부의 차가운 온도와 몽실 몽실한 감촉은 또 묘한 쾌감을 준다.


전기 레인지 위에 팬을 놓고 어느 정도 가열한 다음 오일을 두른다. 다진 양파와 당근을 넣고 볶기 시작한다. 뜨거운 팬에 닿자마자 양파와 당근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치-이. 치-이. 연기도 모락 모락 올라와 환풍기로 빨려 들어간다. 그 다음 으깬 두부를 넣고 수분이 어느 정도 빠질 때까지 볶아준다. 보글 보글 끓는 소리가 더해져 고소한 음향이 집안 구석 구석에 울려 퍼진다.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한 번 더 볶아준 다음 밥 위에 얹는다. 윤기 넘치는 볶음 재료들이 밥 위로 흘러 내리며 사이 사이로 스며든다. 그렇게 하나의 작은 세계가 만들어진다.


10분 정도 되는 조리 과정을 거치면서 의식은 또렷해지고 잠은 멀리 달아난다. 일어나자마자 작지만 확실한 음식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살짝 고양된다.


정신이 들었으니, 식기 전에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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