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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덕 Feb 14. 2018

서른 두 살,
여전히 빈둥거리며 살아갑니다

"난 최대한 적게 일 하고, 실컷 빈둥거리며 살거야!"


이렇게 말했다가, 아빠의 땅이 꺼지는 한숨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십대 중반 학교를 휴학하고 빈둥대던 어느 날이었다. 근데 지금 그 꿈과 꽤나 가까워져 있는 걸 보면 그 때의 선언이 그냥 홧김에 해본 소리는 아니었나 보다. 지난 삼년간 평균 주 20시간의 임금 노동자로 서울에서 살았고, 두달 전 부터는 주 0시간 노동의 완벽한 백수로 승진하여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건물주가 된 것도, 저작권료나 인세가 넉넉히 들어오는 수익 모델을 구축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적게 일하는 일을 되는 대로 구하고, 벌어들인 돈에 맞춰 살았다. 일하는 동안 평균 임금은 대략 월 100만원 정도, 한 달 평균 생활비는 70-80만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독립하고 3년동안 모은 돈은 700만원 정도 되고, 지금 보증금으로 묶여 있는 300을 제외한 나머지 400으로 백수 생활을 반 년 정도 더 이어갈까 생각중이다.  


이 돈으로 반 년을 살아갈 생각을 하는 것은, 한 달 생활비를 50만원(월세-공과금 포함 : 20, 식비 : 10, 통신/교통 : 10, 그 외 10)정도로 잡았기 때문이다. 월세가 적은 것은 동거인과 나눠내기 때문이고, 식비가 적은 것은 공동 밥상을 통한 효율적인 식재료 관리,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비가 적은 것은 지역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자전거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며, 그 외 소비가 적은 것은 대부분의 시간을 하숙공방 모임 준비하기, 모짐 진행하기, 요리하기, 설거지 하기, 공간 꾸미고 청소하기, 도서관 가기, 서점에서 죽치고 있기, 책 읽고 글 쓰기, 낮잠 자기, 멍 때리기 등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사실 돈을 더 모을 수도 있었는데 때때로 지름신이 강림할 때가 있었다. 주로 책이나 생필품, 인테리어 용품 같은 잡동사니를 서점, 인터넷, 다이소 같은 데서 구매하곤 했다. 잡동사니는 고스란이 하숙공방을 꾸미는 데 재활용 되었다.


내가 주로 소비자로서 고민하는 부분은 식비과 임대료에 집중되어 있다. 잘 먹고 잘 자는 문제만 해결되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걸 셀프 임상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잘 먹기, 잘 자기. 두가지 문제는 공유 경제를 어떤 식으로 상상하고 실천하는 가에 달려있다. 공동 주거와 공동 밥상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혈연 중심의 전형적인 가족 형태가 해체되고, 다양한 형태의 가구가 발생하는 과정 속에서 자립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언젠가 방이 여러개 있는 집에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과 복작 복작 같이 밥 해먹고 살고 싶다. 혼자 사는데 쓸데 없이 방이 많아 외로운 사람이 있다면 연락주시라. 


이렇게 일을 적게 하고, 소비를 줄이려고 하는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 속에 푹 파묻혀서 실컷 빈둥거리는 생활은 내 삶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렇게 빈둥거리다보면 또 다른 빈둥거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각계 각층의 빈둥인들이 모여 재미난 일을 빈둥거리며 벌여 나가는데 그게 우연히 수익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큰 기대는 없다. 빈둥거림은 빈둥거림 그 자체가 목적이므로. 빈둥인들의 아지트가 필요해 내 사적 공간을 오픈하여 하숙공방을 만들었다. 


앞으로도 노동시간이 0으로 수렴하는 백수 신분을 이어가고 싶다. 고로 지속 가능한 빈둥 생활을 위해 빈둥 lab을 설치하고, 빈둥거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자립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실컷 빈둥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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