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사는 집은 지어진 지 1년 정도 된 신축빌라다. 올 초에 청년들을 지원하는 한 주거 단체에서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공동 주택 입주자를 모집했다. 남자는 9개나 되는 서류를 제출하고 몇 달 걸리는 심사 결과를 기다린 끝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법적 연령이 청년에 속하고, 소유하는 집이 없고, 돈을 잘 못 벌고, 범죄 이력이 없는 덕분에 살만한 집을 얻었다. 집은 방 세개에 세 명이 같이 사는 셰어하우스다. 제일 먼저 입주한 남자는 신발 자국과 먼지로 무성한 집안 구석 구석을 쓸고 닦았다. 봉이 긴 밀대 하나와 손바닥 만한 손걸레 하나로 방 세개와 거실 바닥, 화장실, 주방, 수납장을 닦았다. 땀을 뻘뻘 흘리고, 무릎과 허리의 뻐근함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뒤늦게 들어올 다른 입주자들 몫까지 헤치웠다.
남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매일 출퇴근하는 직업이 없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돈 버는 활동을 하러 나가거나, 하루 이틀 약속이 있어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집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으르게 일하고도 생활이 가능할까 싶지만, 저렴한 집세와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는 나름의 노하우 덕분에 그럭 저럭 살아가고 있다. 쓸 돈이 없으니 집에만 있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 비아냥거려도, 수입이 적어서 집에 오래 있는 건지, 집에 오래 있고 싶어서 일을 적게 하는 건지 남자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어 딱히 대꾸할 말이 없다. 후자라고 믿고 있긴 하다. 세글자 헤시태그로 자기 소개를 하는 어떤 자리에서 남자는 '#집사람' 이라고 적기도 했다.
이사온 지 3주정도 되었을 때 남자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물론 집사람으로 지내는 건 여전하고, 이전까지 올빼미형 인간이었던 남자의 생체 리듬이 극적으로 바뀐 거다. 남자의 방은 동쪽으로 창이 나있어서 일출과 동시에 태양빛이 남자의 얼굴을 때린다. 요즘은 6시도 안 돼서 해가 뜬다.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광명에 남자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대낮에도 불을 끄면 어둑 어둑 했던 이전 집과는 달리, 해가 뜬 이후부터 빛이 마구 침범하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암막 커튼을 살까도 생각했지만 자명종 없이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 커튼 없이 지내고 있다. 바깥 일정이 없는 오늘도 해는 조용히 떠올랐다. 남자는 이불로 얼굴을 덮으며 한동안 저항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침대 맡에 손을 뻗어 더듬 더듬 휴대폰을 찾는다.
6시 30분.
덜 떠진 눈으로 집안을 어슬렁거리는데 집사람의 영역 표시라 할 만한 흔적들이 보인다. 침대 맡에는 보다 만 책들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고, 싱크대 위에는 어제 야식 메뉴를 짐작케 하는 설거지 거리들이 쌓여 있다. 거실 테이블 위엔 커피 자국이 남아 있는 머그잔과 노트북이 올려져 있고, 건조대 위엔 세탁하고 널은 젖은 빨래들이 빼곡하다.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물을 마시려다가 아침에 양치를 먼저 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기사가 떠올라 화장실부터 간다. 양치를 하며 잠을 깨고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리고 거실 창을 활짝 열고 청소기를 돌린다. 우렁찬 청소기 소리와 바깥에서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로 남아 있던 옅은 잠마저 달아난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밝은 음악을 틀고, 밥을 한다. 쌀을 씻고 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면 얼마 후에 꾸루룩 꾸루룩 소리가 들린다. 김이 모락 모락 나면서 밥냄새가 솔솔 풍긴다. 그 쯤 되면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를 데우고, 기름을 넉넉히 둘러 계란 후라이를 한다. 밥이 다 됐다는 알람이 울리고 조촐한 1인 밥상을 차린다. 이후의 일정은 이렇다. 아침 먹기. 커피 마시기. 독서 모임에 읽어갈 책 읽기. 점심 해 먹기. 시장에 가서 장보기. 낮잠 자기. 글 좀 끄적이기. 누워서 휴대폰 만지기. 마른 빨래 개기. 저녁 해 먹기. 이불 털기. 누워서 책보기. 씻으면서 내일은 집에서 뭐할까, 생각하기. 주황색 스탠드 조명만 켜고 눕기. 침대 맡에 잡히는 아무 책이나 들춰보기. 그러다 잠들기.
아예 '집사람'이라고 적힌 명함을 파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스스로를 집사람으로 생각한 이후부터 '집사람다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좀 더 매력적인 집사람이 되고 싶어진 거다. 직업에 직업정신과 직업윤리가 있듯이, 집사람도 집사람만의 사명감과 윤리의식이 있어야할 것 같았다. 존경받는 집사람 모델이 많아져서 어린 남자 아이가 장래희망 란에 '집사람' 이라고 떳떳하게 적을 수 있으면 좋겠는 거다. 아니 우리 누구 누구가 집사람이 되고 싶단 말이야? 아니 글쎄 우리 애가 집사람이 된다지 뭐예요. 호호호. 남자 아이가 집사람을 꿈꾸는 것만으로 한 가정에 환희와 감격을 가져다 주었으면 하는 거다.
안녕하세요. 집사람입니다.
이렇게 소개해도 듣는 사람의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는 세상을, 남자는 한번씩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