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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덕 Jun 28. 2020

떠나는 마음

18:00 - 07:00


18:00      


인천을 다녀왔다. 2박 3일이었고 집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다시 들어온 시간으로 따지면 48시간의 외출이었다. 어느 한 낮에 스케줄 달력을 무료하게 보고 있는데 목,금,토 3일 연속으로 일정이 비어 있었다. 보통은 일정이 없구나, 없네 없어, 하며 며칠 동안 무위의 시간을 보낼 생각에 입꼬리가 씰룩이거나 방구석을 데굴거렸을 테다. 또 때 되면 밥을 먹고 책을 보거나 낮잠을 자고 느지막이 산책을 나가 슬리퍼 차림으로 동네를 어슬렁거렸을 수도 있다. 근데 그 날은 보통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고 낯선 곳에서 자고 싶었다. 해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가방에 옷 두벌, 세면 용품을 넣은 파우치, 휴대폰 충전기, 넷북을 넣었다. 그리고 두 권의 책을 챙겼다. 한 권은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에게 해와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자유인 조르바가 책만 읽는 깝깝한 먹물 화자를 참교육하는 이야기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자유인 조르바의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지만, 또 많은 대사들이 쓸데없이 마초적이고 여성혐오적이다. 수컷, 사내, 두목 같은 말이 나올 때도 철지난 남성 잡지에 나오는 속옷 모델이 떠올라 몰입을 깬다. 이 책의 출간 년도는 1946년이고 카잔차키스는 1957년 독감으로 죽었다. 우리나라에는 1980년 이윤기 번역으로 출간되었고, 내가 들고온 책은 열린책들 출판사 2012년 12월 30일 세계문학판 27쇄본이었다. 법정 스님은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라는 제목으로 그리스인 조르바 서평을 쓰셨다. 왠지 스님은 몸치였을 것 같은 생각에 혼자 웃었다.    

 



20:00     


광화문 교보문고에 왔다. 요즘 나온 여행 책들을 들춰보며 갈만한 여행지를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서점 밖으로 나와 종로 쪽으로 걸었다. 무작정 집을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고, 몰라도 썩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서울 밤 거리를 걸었다. 술은 안 먹었지만 약간 취한 기분도 들었다. 여행을 떠난 건지 마실을 나온 건지 모르겠는 알딸딸한 기분으로 그냥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다시 나올까, 일단 나왔으니 광화문 근처에 숙소를 잡을까, 생각하며 걷는데 종각역 1번 출구가 보였다. 문득 1호선 종점이 궁금해졌다. 지도 어플을 열어 노선을 확인해보니 서쪽으로는 인천역, 남쪽으로는 신창역, 북쪽으로는 소요산역이 종점이었다. 세 곳 모두 가보지 않았지만 왠지 서쪽으로 가고 싶어졌다. 인천행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해서 승강장 벤치에 앉았다. 지도 어플로 인천 찜질방을 검색했다.      


들고 온 또 다른 책은 허수경 시인의 유고 산문집이었다. 주황색 하드커버로 제목은 ‘오늘의 착각' 이다. 표지를 넘기면 한 편의 에세이 같은 시인의 소개가 나온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왔다. 나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셋방 아니면 기숙사 방이 내 삶의 거처였다. 작은 방 하나만을 지상에 얻어놓고 유랑을 하는 것처럼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했고, 여름방학이면 그 방마저 독일에 두고 오리엔트로 발굴을 하러 가기도 했다. 발굴장의 숙소는 텐트이거나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임시로 지어진 방이었다."     


나는 스물 여덟에 집을 나왔고, 집을 나와도 집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마음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시인은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밥을 벌기 위해서였고 "처음에는 봉천동에서 살다가 방송국 스크립터 생활을 하면서 이태원, 원당, 광화문 근처에서 셋방을 얻어 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한국을 떠나 독일로 갔고, 계속 독일에서 살다가 "2018년 10월 3일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는 창동에서 태어나 주욱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스물 여덟에 학교 앞 고시원으로 독립했고, 하숙집, 옥탑방, 투룸 셋방을 얻어 살다가 작년에 번동 쉐어하우스로 이사했다. 문득 나는 어디서 생을 마감할지 궁금해졌고, 병원만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의 작은 방을 두고 나는 인천으로 무얼 발굴하러 가고 있나. 발굴장의 숙소는 찜질방이 될 터였다. 




01:00     


새벽 1시쯤 찜질방에 도착했다. 도화역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공간은 무지 넓은데 사람은 거의 없어서 사람과 사람 간격이 10미터도 가능해 보였다. 나는 샤워를 하고 찜질방을 이곳 저곳 둘러보다가 아무도 없는 피톤치드 방에 들어갔다. 콘센트 근처에 자리를 잡고 휴대폰을 충전해놓고 등을 벽에 기댔다. 갑자기 명상이 하고 싶어져서 반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인천의 어느 한적한 찜질방에서 새벽 명상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렇게 제멋대로 살아지는 삶이라면 계획이 무슨 소용이지? 계획의 무용함을 생각하면서 내일 일정을 생각했다. 20분 정도 흘렀을까, 갑자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와 여자 목소리가 섞여 있는 걸 보니 아까 윗층에서 부둥켜 안고 누워있던 커플인가보다. 일부러 피해서 왔더니 왜 하필 여기로? 명상 중인 이 시점에? 피톤치드 방에서 홀로 명상중인 내 모습이 저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나를 힐끔 힐끔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저 사람 뭐야 뭐야 키득거리는 장면이 눈에 보였다(눈을 뜨진 않았지만). 배꼽부터 올라오는 민망함에도 자세를 흐트려뜨리지 않고, 눈도 뜨지 않고 계속 명상을 이어갔다. 저들의 습격에도 굴하지 않은(저들은 그냥 방에 들어왔을 뿐이지만) 스스로에게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10분 정도 후에 눈을 떴고 커플은 아까와 같은 자세로 부둥켜 안고 누워 있었다. 나는 저들이 무섭지도 더럽지도 않았지만 왠지 피해야할 것 같았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책이 다시 떠올랐다. 그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07:00     


의외의 소리가 찜질방 아침 알람이 되었다. 어떤 남자가 굳이 자는 사람 옆에서 식사를 하며 ASMR 먹방을 찍듯 쩝쩝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침 7시였다. 나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났으나 그 사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께름칙한 기분을 씻어냈다. 다시 1호선 지하철을 탔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종점인 인천역에 내렸고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서 날아가는 갈매기가 보였다. 아침은 김밥천국 인천역점에서 유부우동을 먹었다. 약간은 떠나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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