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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덕 Sep 09. 2020

우이천에는 오리가 산다

오리를 자꾸 보게된다. 


아침 산책으로 우이천을 걸으면 물길따라, 혹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오리에게 시선이 머문다. 보면 볼수록 괜히 말 걸고 싶어지고, 어제와 오늘은 어떻게 다른지 살피고 내일은 어디쯤 있을지 궁금해진다. 


오리는 어감부터가 괜히 장난치고 싶게 만든다. 오리는 언제 오리. 오리가 오리 가면 오리간오리. 오리가 다섯이면 오오리..? 꽤액....꽤액....오리의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오리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 (꽤액!)" 

"오리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 (꽤애액!)"


오리는 영어로 덕(duck)이다. 내 이름 끝 글자도 ‘덕’이다. 한 때 몸무게가 많이 나가 오리궁디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궁디 속에 뭐가 들었냐? 궁디를 툭툭 치며 물질X 라고 놀리던 귀여운 악동들이 생각난다. 그럼 난 엉덩이를 더 씰룩 내밀며 물질X의 위용을 자랑하곤 했다. 지금은 체중 감량으로 위용을 잃은지 오래. 그 때 그 악동들은 물질X가 부재한 현재의 점잖은 궁디와 마주할 때마다 어떤 상실감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다. 사라진 물질X의 행방을 물으며 시무룩해질 때가 있다. 


오리는 존재 자체가 장난기를 머금고 있다. 씰룩 씰룩 움직이는 모습도 그렇고 머리를 물속에 퐁당 담갔다 뺄 때는 민첩하면서도 어떤 리듬이 느껴지는 게 누굴 놀리려는 것도 같다. 그러다 가끔 상류로 힘차게 날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날갯짓이 얼마나 씩씩한지 파닥이는 모습만 봐도 댑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물 위로 착지할 때는 시원한 물벼락을 만들면서도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모습이 꽤나 우아하다. 


오리에게는 흐르는 냇물이 길이자 방바닥이자 놀이터이자 침대(물침대?)이자 소파라는 생각을 했다. 


오리 하면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가 떠오른다. 멜로디 없이 가사만 봐도 오리가 보이는 것 같고, 새끼 오리들이 글자 사이를 이리 저리 미끌어지듯 헤엄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날아 오르고 싶어 밤마다 날개를 파닥이다가 엄마에게 혼나는, 새끼 오리의 귀엽고도 기구한 사연이 담겨있다. 


날아 올라 하늘 위로 올라 달이 되고 싶고 달과 놀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가사 속의 엄마는 오리는 날 수 없다며 자꾸 새끼를 혼낸다. 내가 본 오리는 높게는 아니지만, 또 오래는 아니지만, 공중에 떠서 힘차게 날았다. 한동안! 분명히! 힘차게! 날았다. 그런 식의 낮고 간헐적인 비행은 부담없고 유쾌해서 좋았다. 잠깐 날다가 금새 다시 착지할 수 있고, 지상과 공중을 유연하게 오르내릴 수 있어서. 추락해도 웃고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난나 나나난나 난나나

쭈쭈쭈 쭈쭈쭈 쭈쭈쭈


늦은밤 잠에서 깨어

날개를 흔들었죠

오리는 날수없다

엄마에게 혼났죠


이제는 하늘로 날아갈래요

하늘위 떠있는 멋진 달되고 싶어


날아올라 저 하늘 멋진 달이 될래요

깊은밤 하늘에 빛이 되어 춤을 출꺼야

- <오리 날다>, 체리필터 중



자주 반복해서 만나는 존재는 서로를 의외의 장소로 데리고 간다. 내일 만날 오리를 떠올리며 알라딘 서점에 오리를 검색했다. 거기서 <오리백과>란 책을 발견했고, "『오리백과』는 오리의 역사적 고찰에서부터 생태 생리학, 오리의 육종과 유전, 국내 오리산업의 역사, 오리와 민속, 고농서의 사육비법, 오리농법, 세계적인 진기명기 오리 이야기 등을 집대성 한 책이다.” 라는 지극히 제목같은 책 소개 보다는, 책표지에 있는 네 마리의 흰색 오리들이 눈에 들어왔고, 걔네들을 본 것으로 충분했다.  


오리를 만날 때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오리를 보게 되겠지? 그러다보면 나는 조금씩 더 오리 입장에서, 오리스러운 태도를 기르게 되려나? 오리를 한동안 보지 못하거나 오리를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오리를 아주 남처럼 생각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이미 오리가 없는 곳에서 오리 이야기를 너무 해버렸기 때문이다. 누가 오리고기를 챙겨줘도 이제 음식으로만 보지 못할 것이다. 서점에서 오리로 시작하는 책 제목을 보면 괜히 반가울 것이다. 


그리고 우이천에는 오리 친구들(왜가리, 백로, 잉어, 원앙 등)이 많고, 

걔네들도 오리만큼이나 계속 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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