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빙(整氷)

by 가릉빈가

지금은 아니지만 사옥이 이전하기 전까지 시청역 근처에 회사가 있었다. 주변에 덕수궁을 비롯해 산책로가 많았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면 으레 소화도 시킬 겸 손에 당연하듯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주변을 거닐었다. 봄부터 가을까진 그렇게 보내지만 겨울이 되면 추워서 어디 가기가 쉽지 않아, 이따금 시청역에 마련된 서울 도서관을 이용하곤 했다. 점심을 먹고, 거기서 책을 보거나 구경을 하다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소한(小寒)이라 날도 추웠다. 괜히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 얼어 죽었다란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바로 사무실로 돌아가려다가 그렇게 보내기엔 점심시간이 아까워 도서관에서 몸이라도 녹여야겠다란 생각이 들어 발길을 옮겼다.


도서관에 가려면 시청 광장을 지나쳐야 하는데 겨울이면 그 광장은 스케이트장이 된다. 이미 올해도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 않고 탔다. 매해 두어 번은 탔다. 점심시간 혹은 퇴근 후 친구들과 만나서 탔다. 남은 점심시간이 많지 않았고, 도서관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치려다가 정빙기가 빙판을 돌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정빙시간이다. 실내 스케이트장에서 정빙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긴 했지만 개방적으로 본 것은 처음이라 발을 멈추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수 십 명이 날로 지치고 지나가 패이고, 거칠어진 빙판이 정빙기가 지나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반들반들해진다. 어쩜 그렇게 반질반질하니 새하얗고, 반짝이면서 예뻐지는지, 그게 뭐 얼마나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눈을 떼질 못했다.


때마침 오늘은 故 김광석 20주년이 되는 날이라 그런지 스케이트장의 BGM은 평소의 신나고 즐거운 음악 대신 김광석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서 정빙기로 빙판이 매끄러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소한에 바깥에서 추운지도 모르고 10분 넘게 우두커니 바라만 봤다.


멍하니 정빙기의 꼬리를 눈으로 쫓으면서 그저 부러웠다. 내 맘에도 정빙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상처 받아도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았다는 듯이, 사람들의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을 받아 들여 숱한 생채기가 나도 곧 다 나아지듯 나도, 내 마음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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