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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희 Nov 11. 2023

'아무나 하는'의 극렬한 공포: 운전면허 취득기(2)

사람에겐 천성(天性)이란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군자의 도를 깨우칠 만한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자가 적으며, 이와 반대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악행만 쌓다 가는 악인도 거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하고 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주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천성이 착한지 악한지에 따라 애초에 달라지는 것들도 분명 있겠으나, 그 천성을 이겨먹을 수도 있는 것이 환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에게 굳이 악행을 일삼으려 하지 않으며, 나를 짓밟고 깎아내리려고 온갖 수를 다 쓰는 사람에게 잘 대해주기는 힘든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른 사람에게조차 절대로 악행을 저지를 수 없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나'라는 자신도 중요하지만, 나를 둘러싼 '주변'도 분명히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극렬한 공포를 맛보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저 아무런 의미 없는 언행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온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솔직히 그렇게만 반응하지 않았어도 나는 좀 더 편안한 맘으로 운전면허증을 취득했을지도 모른다.




학과교육 3시간을 마치고 오니 엄마는 진짜로 면허증을 따긴 하려는가 보다고 하시면서 장내기능교육은 언제냐고 물었다. 나는 하필 학원 등록을 추석 전주에 하는 바람에 추석 이후로 장내기능교육을 예약했다. 어차피 필기시험을 합격하기도 해야 했으므로 당초 예상보단 일정이 늦어지긴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추석 전까지 필기시험을 보고, 바로 장내기능교육을 받으면 딱 좋은 일정이라고 말했다. 내가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우리 가족은 차라리 무반응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마침 퇴근을 한 오빠가 불씨를 피웠다.


"운전면허증 필기시험이 시험이냐? 그냥 도덕문제지. 보기를 보고 도덕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은 것 고르면 그게 답이야. 하.. 그거 떨어지는 게 이상한 거다."


오빠의 말에 엄마는 맞장구쳤다.


"그 필기시험 아무나 붙는 거야. 그거 떨어지면 어디 가서 떨어졌다고 창피해서 말할 수도 없어."


모자지간은 이구동성으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이 얼마나 쉬우며, 그걸 떨어지는 것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학과교육을 들을 때에도 국가자격시험 중에서 이렇게 모든 문제와 보기와 답을 알려주는 시험도 없다며, 다 한 번에 붙는 시험이라 그러지 못하면 창피한 일이라고는 했다. 이거 한 번에 못 붙으면 정말로 성의가 없는 것이라고, 아무리 쉬워도 문제집 한 번도 훑어보지 않고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란 이야기는 분명 듣긴 했다.


문제는 막상 학원에서 준 필기시험 문제집을 펼쳤을 때 그게 아니었단 것이다. 내 첫 느낌은 '이게 뭐다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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