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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희 Nov 12. 2023

'아무나 하는'의 극렬한 공포: 운전면허 취득기(3)

분명 오빠는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것,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을 고르면 답이라고 했지만 내 눈엔 그렇게 안 보였다. 어디서는 몇 킬로의 속도로 가야 하며, 어떠한 위반행위엔 범칙금이 얼마이며, 그게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영역에서 풀 수 있는 문제냔 말이다. 그걸 상식으로 푸는 사람이 도대체 이 대한민국에서 몇 명이나 되겠냔 말이다! 더군다나 자동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내가 자동차 부품이나 자동차 주행법 등에 관한 영역을 물었을 때 답할 수 있겠냔 말이다. 전기차에 대해서 내가 뭘 알겠냐고~ 전기차 구경도 못 해 봤는데!!!


진짜로 전혀 몰랐던 것들 투성이었다. 분명 쉽다고 했는데, 문제 보자마자 답이 보일 거라고 가족 모두가 그리 말했는데, 나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문제인가란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운전면허 필기시험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풀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풀어도 합격점수인 60점을 항상 넘기긴 했다. 하지만 나는 만만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진짜 이걸 알고 푼다는 느낌보단 잘 찍었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이 나면 짬짬이 어플에서 모의고사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우리 가족은 이구동성으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별 거 아니라 했다. 발로 풀어도 합격할 것이라 했다. 심지어 오빠는 "내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4시간이나 공부했단 거야!"라고 거창하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공들일 만한 시험이 절대 아니라며 생각해 보면 시간낭비라 했다. 그리고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문제집을 보고 있으면 가족이 그냥 넘어가줘도 좋으련만 "ㅋㅋㅋ 공부하니?"라는 놀리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은 "만약 떨어지면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웃으며 농담했다.


가족들은 그냥 하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정말로 이번에 묘하게 압박감을 받았다. 이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진짜 떨어졌다간 이건 망신 중에 개망신이란 생각이 들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흠집이 날 것 같은 위기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계속해서 아무나 다 붙는 거다, 떨어지면 그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이 필기시험 하나가 진짜 뭐라고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야금야금 받아야 하는지 싶긴 했지만 그래도 압박의 무게는 꽤 상당했다.


그 압박감에 필기시험을 보러 가는 버스 속에서도 어플에서 모의고사를 풀었고, 무난하게 83점으로 합격했다. 나는 그때 합격의 기쁨(?)보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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