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희 Nov 14. 2023

'아무나 하는'의 극렬한 공포: 운전면허 취득기(4)

필기시험을 가뿐히 합격하고 닭강정을 사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난 엄마한테 장난을 치고 싶었어어 풀 죽은 얼굴을 보였다. 엄마는 그 얼굴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면서 썰고 있던 파를 계속 썰었다.


"엄마.. 흑흑흑... 나... 83점으로 합격했어....흑흑흑..."


나의 말에 엄마는 파 써는 걸 멈추고 나를 쳐다봤는데 정말 엄마의 표정은 과장 하나도 없이 지구 멸망 3초 전 표정이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그 표정에 당황한 것은 나였다. 점수가 너무 높았나?


"아니? 뭐라고?! 43점?!"

"응?? 아니, 83점... 합격했지."

"아이... 난 또... 그럼 그렇지. 순간 엄청 놀랐네. 그래서 합격 기념으로 닭강정 사 왔니?"

"엉..."


엄마는 다시 느긋하게 파를 썰었지만 나는 여전히 당혹스러웠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외출했던 오빠가 돌아왔다. 나는 오빠를 보자마자 83점에 합격했다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누가 모자지간 아니랄까 봐 정말 엄마랑 동일하게 지구 멸망 3초 전 표정을 지으면서 우뚝 걸음을 멈췄다.


"헐... 하... 43점?"

"엉?"

"아니... 필기 합격점수가 40점이지? 그렇지? 40점 맞지?"

"합격점수는 60점 이상이고."

"아니.. 이.. 무슨.. 세상에... 야.. 너 어디 가서.. 말도 하지 마! 세상에 뭐 이런.. 그걸 43점이라고? 아니 어떻게..."


말까지 더듬으며 한층 더 경악과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보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83점이라니까??"

"하~ 그럼 그렇지! 그 시험이 43점이 나올 수 있지 않다니까! 아, 정말 놀랐네. 뭐야~ 닭강정이야?"


얼굴이 확 풀리면서 오빠는 닭강정의 포장을 뜯어 하나를 날름 먹으면서 그 시험이 한 번에 합격 못하면 이상한 거라며 아까 43점 듣고 눈앞이 새하애 졌단다. 나도 같이 닭강정을 먹는데 엄마와 오빠의 그 지구 멸망 3초 전 표정이 계속 떠올라 어이가 없어서 진짜 웃음이 빵 터졌다.


"아니... 세상에... 설령! 내가 43점을 맞았다고 해도 그런 반응은 좀 아니지 않아?"


정말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웃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정말 필기시험 떨어졌으면 집에서 쫓겨날 것 같았다. 이게 이렇게 중요한 시험이던가?


"아니 이 운전면허증이 뭐라고... (너무 웃어서 숨도 안 쉬어짐) 무슨... 뭐 호적이라도! 파일 것 각오하고! 볼 시험이야? 아까 그 표정 보니까 진짜 떨어졌으면 호적에서 도말될 뻔?"


엄마도 오빠도 자신들의 반응이 지나치게 격했던 것은 인정하면서 같이 빵 터졌다. 그렇게 깔깔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아무나 다 붙는 시험인데 떨어지면 진짜 아니지!"라고 했다.




깔깔 한바탕 웃으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나는 자못 씁쓸했다. 내 발음이 이상했던 건지 동일하게 내 점수를 잘못 듣고 오해한 것은 내 탓일 수도 있는데, 정말 그 반응이... 너무 못 들을 걸 들었단 표정으로 호적 파이기 딱 좋을 분위기였다. 정말로 필기시험을 떨어졌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반응하는 게 맞나 싶었다. '다음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보면 되지~ '하면 될 그런 문제가 아닐까? 마음 한구석이 영 불편했다.


오후에 보였던 엄마와 오빠의 격렬한 반응은 밤까지도 회자됐고, 그 일을 말할 때마다 가족 전부 다 빵빵 터졌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너무 극적으로 반응하긴 했다며 살짝 민망해했다. 그러면서도 그 반응은 당연하다며 가족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무나 다 따는 운전면허증이잖아!"


이미 소화가 다 되었을 닭강정이 얹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나 하는'의 극렬한 공포: 운전면허 취득기(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