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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희 Nov 16. 2023

'아무나 하는'의 극렬한 공포: 운전면허 취득기(5)

장내기능교육은 총 4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루에 2시간씩 총 2일을 받는 형태였다. 1교시는 거의 설명을 듣다가 끝이 났고, 2교시부터는 스스로 운전대를 잡았다. 뒷좌석에 앉아서 남이 운전하는 것을 볼 때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왼쪽으로 핸들 돌리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핸들 돌리면 오른쪽으로 가고, 속도 내고 싶을 때 엑셀 밟으면 되고, 멈추고 싶으면 브레이크 잡으면 되고, 지시등 같은 거야 딸깍거리면 되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 보려니... 깜빡이 키는 것도 버벅거리더라.


내가 장내기능교육을 받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차선 유지였다. 차선의 중간을 가기 위해서는 자기 오른쪽 무릎이 차선의 중앙에 오면 된다고 교육은 받았지만, 난 분명 그렇게 했는데도 한쪽으로 치우쳤다. 그러니 차선을 밟는 경우가 계속 발생했고, 나에겐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좌회전, 우회전을 할 때에 도대체 언제 핸들을 돌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름 공식을 가르쳐주기는 하는데 도대체 나는 모르시겠다고요!!! 어느 지점에서부터 핸들을 돌리기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 또한 골치였다.


무엇보다도 강사가 말해주는 것이 나랑은 안 맞았다. 강사는 창틀의 반을 왔을 때 핸들을 다 틀고 어쩌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면 꼭 부족했다. 강사의 체격과 내 체격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았다. 강사가 말한 대로 하면 스무스하게 넘어가질 못한 터라 헤맸다. 그리고 시간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몇 바퀴 도니까 교육시간이 끝났다.




이 과정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는 게임센터(오락실)를 가면 격투기 게임만 했다. 그리고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알지 못하는 오빠들하고 붙어도 잘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에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분명 기억한다. 격투기 게임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레이싱 게임기가 있었다는 것을. 도대체 나는 레이싱 게임을 한 번도 안 한 것일까. 한번 정도는 해 볼만도 했을 텐데 옹골차게 격투기 게임만 한 것인지. 그걸 했다면 내가 이렇게 고생은 안 했을 텐데!


더군다나 첫날 교육을 마치고 차선유지며, 회전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응은 정말... 아빠는 '잘 따 봐~'하고 방관상태였고, 오빠는 '한 번에 합격 못 하면 이상한 거야. 알지?' 놀리고 있었고, 엄마는 '그게 왜 어려워? 이해가 안 가네~'하고 갸우뚱 모드였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서 소외감 느꼈다.




다음날 3교시의 반 정도가 되어서야 감이 조금 잡혔다. 차선 유지의 방법을 찾았는데 바로 워셔액 분사구가 차선 중앙에 오면 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게 하니 더 이상 차선을 밟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여전히 좌회전과 우회전은 살짝 버벅거리기는 했지만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결국 4교시가 되어서야 어느 정도 감을 다 잡았단 느낌이었다. 강사가 가르쳐준 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이미 확실히 느꼈기에 나만의 느낌과 공식을 가지고 운전하니 훨씬 더 스무스하게 진행되었다. 운전은 나만의 감을 가지고 하는 영역이란 게 맞았다. 


이러한 상태였기 때문에 시험을 바로 봐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는데 강사가 바로 장내기능시험을 보는 것을 만류했다. 아직 여전히 서툰 면이 있어서 추가교육을 받는 것이 낫다고 했다. 나는 그게 다소 충격이었다. 나는 규정시간 내에 모든 것을 처리하는 인생이었던 터라 추가교육 1시간을 더 받으란 말에 정말 운전에 재능이 1도 없구나... 란 생각과 함께 자신감도 바닥을 쳤다. 추가교육을 신청하러 발걸음은 무거웠다. 접수해 주는 분은 많이들 추가교육 받는다며 부끄러운 일 아니라고 나름 격려해 주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운전하는지 알려주었다.


장내기능교육 한 번에 못 붙으면 집안 망신이라고 하도 그래서 유튜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 같은 사람 정말 많더라. 댓글이 성토의 현장이었다. 그러면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운전 이게 뭐길래 이렇게까지 자존감을 하락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은 나의 감정을 알지도 못하는 익명의 사람들이 공감해 주니 힘이 되는 동시에 나도 댓글처럼 몇 번 만에 붙는 건 아닌지 두려움도 엄습했다.




결국 다음날 1시간 추가교육을 받고 나서 예정한 대로 시험을 치루기로 했다. 엄마 왈, 강사 없이 해 봐야 어디를 못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기에 그냥 강행했다. 그래도 감을 잡은 상태여서 그런지 긴장을 하긴 했지만 시험 종료보다 1분 일찍 들어오면서 100점으로 통과했다. 내 추가교육 담당 강사는 "거 봐! 100점이네! 아주 잘했어!"하고 칭찬해 주면서 합격 카드를 줬다.


그때... 정말 눈물 날 뻔했다. 합격률 극악의 시험에 합격할 때조차도 덤덤했던 나인데 이게 뭐라고 순간 울컥했다. 정말 장내기능교육 받고 집에 오는 버스에서 '내가 미쳤지. 안 받아도 되는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이게 뭔 짓이여~'하며 울부짖었는데, 그 맘고생이 휘리릭~ 하고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도로주행교육을 접수하러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러면서 착각했지. 나 운전 좀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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