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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희 Nov 20. 2023

'아무나 하는'의 극렬한 공포: 운전면허 취득기(9)

거의 다 와서 실격된 두 번째 도로주행시험은 가뜩이나 차곡차곡 쌓이고 있던 스트레스가 터지다 못해 자존감을 내동댕이 치기 딱 좋았다. 이미 학원에 등록한 순간부터 지금껏 계속해서 가족들은 왜 한 번에 못 따지? 그게 왜 어렵지? 이해가 안 되네? 의 반응만 연방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의 실수로 결국 3번째 도로주행시험을 봐야 하는 것은 그나마 누르고 있던 분노가 일괄 표출되기 딱 좋은 계기였다.

 

두 번째 실격을 맛본 후에 나는 가만히 있다가도 "아아악!"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거기서 왜! 다 와 놓고! 더군다나 실격 당시 점수가 88점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팔딱 뛸 노릇이었다. 차라리 감점을 당했다면 합격할 상황인데, 그 조금이라도 감점당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만든 실격을 누굴 탓할 수도 없으니 속앓이 외엔 답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합격이 바로 되지 않다 보니 생기는 문제는 비단 내 정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일에 차질이 계속 생기고 있었다. 시험 볼 때마다 4시간 정도는 빼야 했기 때문에 이미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었다.


원래 학원 등록할 때 최초 계획은 논스톱으로 한 번에 합격한다는 생각에 2주 만에 취득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촉박하고, 가능성 희박한 계획이긴 했다. 하지만 하필 등록을 추석 전에 하는 바람에 내 의도와 관계 없이 연휴로 1주일을 날리고, 일 때문에 1차 도로주행시험을 1주일 뒤에나 봤으며, 사실 도로주행교육 역시 연달아 못 받고 띄엄띄엄 받아가면서 진행한 터라 교육 수료 역시 늦었는 데다가 시험 한 번 떨어지면 다음 시험이 3일 후에나 볼 수 있는 규정, 설상가상으로 시험도 바로바로 볼 수 없는 나의 일정으로 시간이 무한정 지체되면서 6주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추가교육과 추가시험으로 돈은 돈대로 지출하고 있고, 시간은 시간대로 소비하고 있으면서 일은 일대로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급박했다. 언제까지 운전면허에 매달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추가교육과 3번째 시험을 예약하면서 왜 시간 남아도는 대학생 때 따야 한다고 하는지 여실히 느꼈다. 사람이란 그걸 해야 할 타이밍이 확실히 존재하긴 한다.




또 나는 웬만한 시험에서 탈락한 경험이 별로 없었던 터라 도대체 이 운전면허가 뭐라고 이렇게 탈락하나 싶기도 했다. 다른 시험을 볼 때에도 긴장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왜 다른 시험과 이렇게 양상이 다른가 하고 고민을 해 봤는데 애초에 시험의 성격이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모든 시험들은 다 필기시험이었다. 항상 필기시험을 볼 때 초반 얼마 간은 긴장해서 때론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페이스를 찾아서 무난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운전면허시험은 긴장을 고를 시간 자체가 없다. 필기시험은 내가 2-3분 정도 눈을 감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여유도 있고, 모르는 문제는 별표 처리 한 후에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운전할 때 그런 게 어디 있나. 모든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애초에 기대도 할 수 없고, 도로의 사정은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에 임기응변이 떨어지는 나에겐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더군다나 필기시험은 내가 실수를 몇 개 한다고 해도 결국 평균 점수로 합격 여부가 결정 나기 때문에 내가 다른 과목이 좀 약해도 과락이 아닌 이상이야 만회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이 운전면허시험은 실수 하나 제대로 하면 내 점수가 100점이든 80점이든 관계없이 그 자리에서 실격처리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운전이란 것이 실수 하나로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동의하지만, 수험자의 입장에선 복구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소실되는 것이라 대충 이 정도면 되겠네~가 아니라 끝나야 끝나는 것이었다.




더욱이 가장 쉬운 코스에서 실격처리 됐기 때문에 왠지 도로주행시험을 합격한다는 것이 요원해 보였다. 그래서 엄마한테 이런 말까지 했다.


"지금부터 변호사 시험을 공부하라면 1년 후에 붙을 자신은 있어도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할 자신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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