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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희 Nov 23. 2023

'아무나 하는'의 극렬한 공포: 운전면허 취득기(終)

접수처에 가서 남은 절차까지 다 마무리 지은 후에 핸드폰을 봤더니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지금까지 첫 번째나 두 번째로 시험을 봤던 만큼 20~30분 안에 결과를 제까닥 보고했는데, 1시간 30분이 넘도록 어떠한 연락도 없으니 전화하신 듯했다. 엄마한테 합격을 했다고 말하니 엄마는 아쉽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어머~ 이번엔 불합격해도 호적 파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려고 전화했더니~ 합격했네."


필기시험 점수 잘못 듣고 그 난리가 난 이후에 우리 집의 밈 아닌 밈이 '호적 판다'였다. 장내기능시험 한 번에 합격할 때도 가족의 반응은 "호적 안 파이려고 열심히 했구먼?"이었고, 첫 번째 도로주행시험 떨어졌을 때 "호적 팔 때가 드디어 됐구나!!!"였고, 두 번째 도로주행시험 떨어질 때에는 "호적 파러 진짜 가야겠네"였다. 정말 가족이 한 마음으로 놀려먹고, 압박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상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이야기는 합격했다고 말하기 전에 말해야 진정성 있다고 생각은 안 해요?"


퉁명스럽게 받아쳤더니 엄마에게 그런 건 씨알도 안 먹힌다. 고기 구워줄 테니 후딱 집으로나 오란 소리만 들었다.




사실 나는 평균적으로 운전면허시험을 합격했다고 생각한다. 필기시험과 장내기능시험은 한 번에 합격했고, 도로주행시험이 3번 만에 붙어서 다소 늦어진 것은 있지만,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로주행시험은 바로 붙기보단 두세 번에 붙는다는 경우가 많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 가지 일정이 꼬여서 바로바로 교육과 시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날짜가 늦어진 거지, 그냥 보통적인 수준이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하필 내 가족이 그러하지 않은 분들이고, 하도 운전면허를 한 번에 못 따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해서 나는 정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사람은 신경을 많이 쓰면 꿈에도 나오는데, 운전면허증 따는 동안 꿈에서 운전하는 꿈을 얼마나 많이 꿨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소 억울한 것이 내 가족들은 이미 운전면허증 딴 지가 오래됐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오빠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그때 전기차 없었잖아! 어린이 보호구역 없었잖아! 그때는 필기시험이 도덕시험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그리고 그때는 차도 이보단 적었을 것 아냐? 나는 교육하고 시험 볼 때 시속 30킬로가 넘지 못하고 거북이처럼 간 적도 많은데! 사실 자기들 땄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 아니냐고! 자기네들 고리짝 이야기를 나한테 적용하는 것도 이제 생각하면 억울하다.




정말 나는 우리 가족이 조금만 더 무관심하고, 한 번에 따야 한다고 푸시만 안 했어도 정말 훨씬 더 맘 편히 땄을 것 같다. 그놈의 '아무나 다 하는'이라는 미명 하에 얼마나 사람을 은근히 볶아대던지... 누구나 다 하는 걸 못 한다는 게 얼마나 피 말리는 건지 처음 느꼈다. 지금까지는 대충 사람들이 해 오는 것 다 해 왔고, 때로는 남들이 잘 못하는 것도 해 오면서 살아왔던 터라 잘 몰랐는데... 남들 다 하고 있는 것 혼자서 못 하고 있는 게 얼마나 소외감 들고 마음이 다급해지고, 긴장되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운전 못 하면 어떤가? 아닌 말로 내가 운전면허증이 없다고 할 때마다 들은 소리가 "그 아무나 다 따는 걸 왜 너는 없어?"였다. 나는 운전을 못 했어도 잘 살아왔다. 솔직히 운전면허증이 있다고 달라지겠는가? 운전의 여부가 삶의 질을 높이는데 그렇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격증이다.


나는 그래서 운전면허를 따려는 사람들에게 '아무나 다 하는 거야'라는 말은 안 할 것 같다. 나는 충분히 고통받았다. 굳이 타인에게 압박 줄 필요도 없다.




시험에 합격하고 한 일은 면허증만 따면 차를 사 주겠다고 호언장담한 친척들에게 단 세 글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 '차 사 줘'


이 메시지를 받은 친척 중 하나는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이제 이야기하니?"였고, 또 다른 친척은 "쥐약 사 먹고 죽을 돈도 없어~"였다.


아무도 차를 사 주지 않고, 아버지는 자신의 차를 조금이라도 운전하게 할 생각이 정말 눈곱만큼도 없는 상태인 고로 나는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장롱면허로 결정됐다.


그렇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땄건만 여전히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 인생이다. 그래도 만약에 다급한 순간에, 혹은 어떠한 기회가 될 때 법에 저촉 없이 운전석에 앉을 자격은 얻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따금 운전할 일이 있겠지. 결국 자격증이란 것이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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