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 무덤을 내가 판 것 같다

by 가릉빈가

내 피아노는 오로지 엄마의 욕심과 열망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교회 반주자로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겠다는 엄마의 일념으로 피아노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라면 자신의 자녀가 눈곱만큼도 피아노에 재능이 없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교회 반주자에 관해선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환장의 콜라보는 정말 징글징글하게 엄마하고 싸우면서도 결국 이어졌고, 중학교 2학년 때 피아노 과외 선생과 싸우는(?) 것으로 피아노 레슨과 안녕을 고할 수 있었다.


약간 삼천포로 넘어가서 그 마지막 피아노 선생을 이야기할 것 같으면 정말 앞과 뒤가 다른 선생이었다. 그 선생은 한 악장을 칠 때마다 실수할 수 있는 기회는 단 3번이었다. 3번 넘게 틀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정신이 나간 것 아니냐, 미친 거냐, 예의가 없다, 그럴 거면 피아노 때려치워라 등의 별 이상한 소리는 연거푸 하면서 조금만 틀려도 피아노 치고 있는 손등을 짝짝 때리는 선생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단 한 번도 당해 본 적 없던 것을 중 2가 되어서 당했다. 상당히 신경질적인 선생이었는데 이따금 엄마가 집에 있을 때 피아노 레슨을 받을 때에는 얼마나 부드럽던지. 아무리 틀려도 화내는 법 없이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환멸 나서 엄마한테 몇 번이나 전공할 것도 아니고 중 2나 됐는데 언제까지 피아노를 배울 수 없고, 무엇보다도 선생이 맘에 안 든다고 몇 달을 말했는데도 엄마는 생각을 바꾸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슨 도중에 뭐가 맘에 안 들었는지 갑자기 레슨 안 한다고 선생이 그냥 나가버렸다. 그 상황이 어이가 없어 멍하게 있다가 이참에 잘됐다 싶어서 잡지도 않았더니 몇 분 후에 다시 돌아와서는 “넌 어떻게 학생이 되어서 선생님이 나갔는데 잡지도 않니?”하고 따지길래 “죄송해요. 근데 저 그만둘게요.”라고 한마디 했다. 그 선생은 기가 찬 표정을 하더니 다시 나갔고 그게 끝이었다.


어쨌든 이 징글징글한 피아노 레슨은 그 일로 끝이 났지만, 피아노 반주자로서는 끝이 안 났다. 교회를 안 다니는 것 아닌 이상이야 안 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징글징글한 교회 반주자를 안 할 수가 없어서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그 반주를 하기 싫어서 외국으로 날아가는 사태까지 생겼다. 왜냐하면 성가대 반주와 교회 본예배 반주를 하는 것도 질색팔색 하는데 오르간 반주까지 시키면서 나는 휴학을 하고 그대로 외국으로 튀어버렸다. 굳이 외국에 그리 오래 있지 않아도 됐지만 3개월이나 체류하며 나중에 돈이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빌빌거리며 바로 귀국을 안 한 건 그놈의 교회 반주자 인생을 이참에 결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있을 때에는 당연하게 교회 반주자가 새로 구해져 있었고, 다시 반주자로 복귀하라는 제의가 들어왔으나 말끔하게 거절하는 것으로 교회 반주자 인생도 끝을 냈다.


하지만 교회 반주자가 싫었던 것이지 피아노 치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고, 나는 악보를 주면 너무 어려운 곡이 아닌 이상이야 충분히 칠 수는 있었기 때문에 나 딴에는 띵까띵까 거리면서 피아노를 취미로 치긴 했다. 물론 엄마가 원하는 교회 반주가 아닌 -진정 찬송가와 성가곡은 쳐다도 안 봤고, 듣지도 않았다- 고전 클래식 즉 모차르트, 쇼팽,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곡은 부지런히 쳤다. 엄마는 반주하지 않는 것에는 상당히 뒷골 당겨하셨지만 내가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 칠 일이 있을 때마다 주변에서 내 칭찬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엄마는 그걸로 대신 참으셨다. 이따금 뒤에서 “왜 교회 반주자를 안 하니~ 내가 너 그 모습 보려고 시킨 건데~”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진짜로 나는 교회 반주자를 하기 싫단 말이다.


그러다가 또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예 피아노를 놓게 됐는데, 아무리 예전에 잘 쳤던 것이라도 썩히면 답이 없다고 이젠 어디 가서 내가 쇼팽 에튜드 좀 쳤다 이런 소리 할 만한 실력이 더 이상 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이 들어서 다시 하다 보니까 기본이 없는 건 아니나 유려함이 떨어지는 만큼 손가락이 제대로 돌아갈 때까지 쇼팽이나 베토벤 곡 같은 제대로 폼 잡고 하는 곡보다는 어디서든 간단하게 칠 수 있는 자그마한 소품집 위주로 완성도를 높이기로 했는데, 마침 날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교회 반주를 하시는 분이더라. 이야기하다가 교회 반주엔 영 실력도 재미도 없어서 안 한다고 했더니 “그냥 조금씩 다시 반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가르쳐줄게요“ 라길래 ”시간 나면 좀 해 보죠~”라고 했다. 그거 배운다고 교회 반주를 다시 시작할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랴.


거기까지로 끝났어야 했는데 입이 방정이라고... 엄마랑 피아노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교회 반주자더라~ 하면서 무심코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는 눈을 반짝거리며 “네가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게 교회 반주를 다시 하라는 하나님의 계시야!”라고 하시더라. 난 당연히 그 소리를 듣자마자 정색했으나 엄마는 선생님을 너무 잘 만났다며 얼마나 들떠하시는데 뭐랄까. 엄마는 본인이 학원비를 내 줄 의사가 있다고까지 표명하셨다. 그렇게 힘겹게 빠져나왔던 구렁텅이를 아무래도 내 발로 스스로 들어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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