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여 작년부터 나름 잘 키웠는데 올해 봄과 여름으로 넘어오면서 반 이상을 죽였다. 베란다에서 키울 때에는 괜찮았지만, 겨울이 되어 실내로 모두 다 들였는데 식물을 제대로 키우는 게 처음이고, 무엇이 환경에 안 맞았는지 어느 순간 시들시들하더니 결국 봄과 여름쯤 되었을 때 대부분 죽어버렸다.
물론 그렇게 된 것에 살짝 변명을 보태자면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한몫을 하긴 했다. 유달리 식물만 있으면 어떻게든 건드리지 않고는 사족을 못 쓰는 고양이가 한 번 건드리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베란다에 있을 때에도 괴롭혔는데 실내에 들어왔으면 그냥 밥이다. 가지 꺾어놓고, 입 물어뜯어놓고, 꽃을 떨구고 나면 꼭 시들었다. 장소를 바꿔도 공중전을 하는 고양이에겐 아무 의미가 없더라.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올봄에 꽃을 다시 들이면서 겨울이 다가와도 실내에는 들이지 않기로 맘을 먹었었다. 실내에 들여놨더니 흙에 하얀 곰팡이(?)도 폈고, 고양이의 힘찬 방해와 볕을 아무래도 베란다만큼 못 봐서 그런지 결국 죽이는 꼴을 한 번 겪으니 이번엔 어떻게 해서든 베란다에서 겨울을 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다짐과는 무색하게 며칠 전 결국 이 제라늄을 실내에 들였다. 애석하게도 현재 살아남은 식물은 딸랑 2개로 그중 하나다. 딱히 이렇다 하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꽃대를 솟아올려 결국 분홍빛 꽃을 선사하는 것이다. 물론 제라늄은 꽃이 계속 핀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그런 꽃들을 키웠었다. 내 앞에서 안 그래서 문제지. 그런 의미에서 이 제라늄은 아직은 식물을 키워도 될 자격을 증빙해 주는 것 같아서 기뻤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날씨가 추워지면서 베란다에 있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그냥 겉으로 딱 봐도 살짝 얼어붙은 것이 보였다. 꽃대들은 가을이 깊어질수록 더 많이 솟아오르고, 봉오리도 더 많이 맺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꽃봉오리만 맺혀있을 뿐 피지를 않았다.
결단의 순간이었다. 이 애를 실내를 들이는 순간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가. 겨울을 실내에서 보내어도 내년에도 저렇게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인가. 엄마는 며칠 더 두고 보자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영 아니었다. 그렇다고 베란다에 당장 겨울나기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았으므로 결국 실내에 들였다. 고양이에게 피해를 입지 않도록 나름 위치를 선정했다(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는 못 건드리고 있다). 실내에 들이고 몇 시간 후에 보니까 왠지 제라늄이 "아~ 따뜻하다. 이제야 좀 살겠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2일 후에 저렇게 꽃을 활짝 피워줬다. 다른 꽃봉오리들도 꽃을 활짝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바듯하게 마지노선에서 건져 올린 것 같다. 이 활짝 핀 제라늄을 보자니 요즘 들어 더더욱 절박하게 가슴속을 긁고 있는 '타이밍'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회생할 수 있는 기간은 분명 정해져 있고, 그 타이밍을 놓친다면 아무리 간절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제라늄을 실내로 들인 날이 첫눈도 아주 펑펑 쏟아지는 첫눈이 내린 날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며칠 더 두고 봤다간 꽃은 다 얼어붙어서 그 이후에 실내에 들였어도 꽃은 피워주지 않았을 것 같다. 아마 내 짐작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된 것 실내에서 어떻게든 잘 키워봐야겠다. 적기의 타이밍을 한 번 잡아본 만큼, 이젠 실내의 타이밍도 요리조리 잘 굴리다가 내년 날이 따뜻해지면 냉큼 베란다로 옮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