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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동이 May 05. 2019

쉽게 행복해지기.

'걷는 사람, 하정우' 를 읽고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이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걷는다는 것, 이 투박하고 촌스러운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를 통해 나는 행복감을 찾는다.
- 걷는 사람, 하정우 -



문장이 콕 박혔다.

그리고 부러워졌다. 걸을 때 행복하다니.


비판적 사고가 발동했다.

정말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할까.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걷기'가 정말 행복감을 줄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행복의 기준을 내가 설정할 수 있는 것이고 조금 더 손쉬운 본능적 행위를 통해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뻗쳤다.




사실 하정우의 멘트가 부러운건 행복을 발견하는 시간 때문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마주한다.

생각지도 않게 이벤트에 당첨되거나 운이 따를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행시- 처럼 예상과는 다른 기분좋음이 생겼을 때 행복을 선사 받는다.

다른 부류는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는다. 운동, 요리와 같이 즐겨하는 취미 생활을 통해 즐거움을 느낀다. 또한 어려운 이웃에게 선행을 베품으로서 숭고한 의미의 감명을 받는다.

두 가지의 공통점은 능동적인 '행위' 가 있고 그것으로 파생되는 일련의 사건과 교감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나 역시 나의 행복을 부지런히 찾는다.


흙을 만지니 기분이 좋았다. 부드러운 흙이 손에서 빠져 나가는 촉감이 짜릿했고 새로운 물건이 탄생하는 순간이 황홀했다. 그렇게 도예에 빠졌다.


연주자의 표정이 좋았다. 자신의 곡에 심취한 연주자들을 보고 20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다. 머리는 잊었지만, 손가락은 기억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좋은 선율이 흘러나오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에 빠졌다. 그렇게 피아노는 하나의 안식처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은 신나고, 여행은 언제나 옳다.


사무실에서 몰래 NBA 매운맛 커리와 털보네이터의 스텝백 삼점 슛을 보는 순간도 즐긴다.


이번 연휴, 강원도 산골짜기 호텔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너무 행복하다.




그렇다면 어떤 시간이 부러웠을까?


위에 열거한 나의 행복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 이만큼 행복하다고 자랑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정우의 행복이 부러웠던 이유는, 그가 매일 아침 저녁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필연적으로. 

무엇을 배우고,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평범한 '걷기'를 통해 행복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그는 나보다 많이, 그리고 자주 행복하다. 하루에 적어도 2번 이상은(집을 나가고 들어오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행복한 감정을 느끼기에 남은 삶도 더 윤택해 지는 것은 아닐까. 혹은 걷기를 통해 더 많은 영감이 흘러 삶의 자신감이 넘치고 심지어 불행도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모두가 행복해 진다면?


만약, 격투 게임에서 나오는 파워 게이지처럼 행복의 종류와 강도가 수치화 된다면 어떨까?

직장에서 일이 많으면 불행지수가 올라간다. 부모님께 혼나고 나면 불행지수가 100%로 꽉 찬다. 반면 엔돌핀이 솟아나는 운동을 하거나 게임에서 이기면 행복지수가 상승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맛의 정도에 따라 행복지수가 세분화 되어 올라간다.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손쉽게 올라가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금방 행복해질 것이다. 불행지수는 널뛰겠지만 행복지수는 상향 평준화 될 것이다. 어떤 행위나 환경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 정말로 행복한 세상이 될 지는 미지수지만, 나쁜 상상은 아닌 것 같다.




나도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행복을 수치화 시켜 정해진 정답을 따라갈 수 없다면, 일상이 행복으로 넘쳐나게 만들어야 한다. 

작은 것들로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마음 가짐을 바꿔야 한다.

즉, 행복의 역치를 낮춰야 한다. 행복의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가까운데 있다'는 옛말이 세삼스럽게 피부에 와닿는다. 

햇살이 들어오는 아침에 알람없이 일어나는 것도 행복으로 정의할 수 있고, 신선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행위도 행복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마추고 인사하는 순간도 행복할 수 있다.


멀리서만 행복을 찾으려 했던 나의 마음에 맴도는 한마디.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이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시작과 끝도 행복한 하루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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