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6W, 태명이 그리 중요한가요?
. 어머~ 이모 치즈 먹으라고 주는 거야? 하엘이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착할까~ 천사 같네~
> 으응응이이응이이이이이응(옹알이)
. 고마워~ 잘 먹을게! 먹고 하엘이처럼 이쁜 아기 낳으면 좋겠다.
>> 언니~ 하엘이가 앙팡 치즈 줬으니까, 이거 먹고 아기 생기면 이름은 앙팡이다~ 알았지?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아내에게 건네 준 앙팡 치즈.
아이들에게 치즈는 훌륭한 간식이다. 꿀같이 달콤한 치즈를 본인에게'만' 건넨 사실이 아내는 은근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엘이 엄마 농담을 깔깔 거리며 웃어넘겼던 나와 다르게 그녀는 지나가는 말을 흘리지 않았다.
아내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앙팡이'가 자리 잡았다.
정말 신기한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앙팡이'가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흔히들 말하는 아기의 기운(그날 듬직한 갓난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탓인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아내의 초인적인 능력 때문인지, 혹은 흘러내렸던 내 코피 덕분인지는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우연히 선-태명, 후-임신의 길을 걸으며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커진 것은 확실했다. 작년에 겪은 유산의 아픔은 겉으로는 치유된 듯했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붙잡고 있었다. 하엘이 엄마가 태명을 이야기했을 때도 속으로 살짝 움찔했다. '다시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언제 임신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누군가 대답해 줄 수 없지만, 확신 없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길 수십 번. 선뜻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와 아내는 역설적으로 아기를 통해, 무엇보다 '앙팡이'라는 태명을 통해 그렇게 진짜 우리 아기를 만났다
임신 소식을 접한 부부는 되도록이면 태명을 빨리 정하는 것이 좋다. 이유는?
어색한 상황을 타개할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된다. (뭣소리지? 안다. 나도 말이 안 되는 거) 귀여운 내 새끼의 이름 갖고 뭐하는 짓이냐며 아내가 맷돌 장인 유아인 표정을 짓고 있지만, 꽤 유용하다.
주변에 임신 소식을 알리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 무엇일까?
열에 아홉은 몇 주가 지났는지와 태명을 묻는다. 그때 '태명은 아직..'이라고 말하는 순간 어색함이 만연한다. 결혼 소식을 알리면 신혼여행지를 묻는 것처럼, 태명은 임신 소식에 뒤따르는 가장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그만큼 정말 많이 대답하게 된다.) 이때, 아직 태명이 없다고 답하면 서로 민망한 순간이 찾아온다. 느려 터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적막감은 커지고, 마주 앉은 식사 시간에는 턱운동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자신 있게 태명을 말한다면 아주 나이스 하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 어떤 이유로 태명을 짓게 되었는지, 자신과 배우자의 생각이 어떻게 달랐는지 등 대화의 주제가 넓어진다. 가끔씩 속도 모르고 아직도 태명을 안 지었냐며 '나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데, 이들을 응대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아예 말을 섞기 싫다면 없음으로 일관하는 것도 방법이다.)
농담 삼아 적긴 했지만, 사실 태명을 굳이 빨리 지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 국어책에서 배웠듯이 모든 생명은 이름이 불러졌을 때 나에게 의미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대명사인 '아기, 아가'로 불리면 혹시나 듣는 아기 서러울 수 있다. 특이하든 특이하지 않든, 태명을 빨리 정하고 부부가 공통된 이름을 부르면 그만큼 공감대와 애정이 쌓인다. 사소한 것에 기뻐하며 좋아하는 여성들은(내 아내는 그렇다) 귀여운 태명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미소를 띤다. 입장 바꿔 본다면 내 뱃속에 날 닮은 생명이 꿈틀대고 있고 이름을 나지막이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감격스러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사람들이 태명을 어떻게 짓는지 구분을 해봤다. 나는 어떤 타입인지, 어떻게 지을지 생각해 보길^^
된소리파 : 튼튼이, 딴딴이, 짹짹이, 찰떡이
ㄴ 가장 평범한 스타일. 보통 태명은 된소리가 들어가야 울림이 커서 아이가 잘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기원파 : 기쁨이, 축복이, 딱풀이, 열무(열 달 동안 무럭무럭 자라라는 뜻의 최근 유행 태명)
ㄴ 인류의 염원인 행복과 건강이 깃든 태명.
학구파 : 똘망이, 똑똑이, 반짝이
ㄴ 나는 못했으니 너는 할 수 있음을 태어나기 전부터 심어주는 스타일.
시즌파 : 유월이, 팔월이, 여름이, 봄봄이, 새싹이
ㄴ 무심한 듯 보이나 태명과 생일을 한 큐에 설명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태명을 지었다면, 이제는 실전에 돌입할 시간이다. 바로 '임신부 등록'과 '국민행복카드 발급'이다.
여기서 또 잠깐!
임신부가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은 무엇이 있을까.
대학을 졸업해도 실 생활에 꼭 필요한 시중 금리와 부동산 계약 방법도 알지 못하는데 (부끄럽지만 내가, 주변 친구들이 그랬다) 임신부 정책을 알리가 없다. 임신부임을 '등록' 한다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외치지만 실질적인 지원과 더불어 정책에 대한 홍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알고 빨리 움직여야 한다.
1. 임신부 등록하고 뱃지 받기
> 준비물 : 산부인과에서 발급받은 '건강보험/출산 진료비 지급 신청서(임신 확인증)'과 신분증
> 발급처 : 거주지 또는 근무지(명함 지참 필) 소재 보건소 - 모자건강과(종로구 보건소 기준)
> 임신부 등록 선물 : 엽산(3개월), 철분제(3개월), 그리고 임신부 뱃지 !!!!
2. 국민행복카드 신청하고 바우처(정부지원금) 받기
> 준비물 : 산부인과에서 발급받은 '건강보험/출산 진료비 지급 신청서(임신 확인증)'과 신분증
> 발급처 : (국민행복카드 발급이 가능한 금융권과 카드사) bc카드, 롯데카드, 삼성카드, 농협
> 지급 금액 : (단태아의 경우) 60만 원 / (다태아의 경우) 100만 원
임신부 뱃지는 교통 대란에서 수많은 아재와 할주머니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슈퍼패스급 딱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성이라면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필수품인데, 안정이 필요한 임신 초기에 배가 나오지 않아 양보받지 못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이와 관련된 일화는 차고 넘치니 케이스별로 곧 오픈하겠다. 커밍순 !)
국민행복카드는 임신기간의 병원비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나오는데, 출산까지 가기엔 금액이 턱 없이 모자란다. 생각보다 병원을 많이 방문하게 되고, 초음파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할 때마다(최소 한 달에 한 번은) 찍기 때문에 60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래서 회사 복지 혜택이 있는 경우, 잘 살펴보고 비용을 충당할 필요가 있다.
신규 사업을 보고 할 때 선두에 서서 말만 떠드는 아이디얼리스트(일명 임원진이라고 부른다)가 있다면, 그 뒤에는 죽어라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작은 숫자 하나에 울고 웃는 실무진이 있다(나다). 가정을 회사에 빗대어 본다면 비전을 세우는 회장, 경영을 감시하는 이사, 주된 의사결정을 지는 팀장, 실무급에서 발로 뛰는 과장급 일까지 모든 일을 오직 둘이서 해결 해야 한다.
임신도 마찬가지다.
'앙팡이'가 아내의 몸에서 무럭무럭 자라듯이 '예비 아빠'로서 나에게 주어지는 역할 또한 매일 새롭게 생긴다. 열 달이 지나면 예쁜 아기가 짜잔 하고 태어날 것이라 믿는 (아이디얼 한) 남편이 아닌, 아내의 작은 변화 하나에도 함께 울고 웃는 (실무급의) '진짜 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사소한 기록 하나가 아내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