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빠가 되기 위한 준비
책을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했다. 재미가 없어서-
외국 소설은 이름부터 읽기 어려워 사건 몰입이 안 되었다. 인물 간 관계를 파악하기도 전에 나가떨어졌다. 그나마 일본 사람 이름은 눈에 들어와 '용의자 X의 헌신'은 군대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자기계발서는 뻔한 소리라생각해 열어보지도 않았고 국내 소설은 지루했다. 에세이는 감성적인 게 싫어서 안 읽었다. 결론은 그냥 책이 싫었다. 그리고 책 안 읽어도 세상은 살 만했다.
첫째. 시기에 맞는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당연한 진리다. 재미가 없어 가까이 안 했고, 재미를 느끼자 더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미가 '시기', 그러니까 개인이 성장하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도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한다. 군대에서는 원더걸스가 세상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ITZY의 매력에 빠졌다. 이렇듯 환경과 시대가 변하면서 흥미를 느끼는 대상도 바뀐다.
2017년은 입사 5년 차로, 극도의 매너리즘에 빠진 시기였다. 갑갑한 현실 때문인지 회사가 정답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하는 소재에 끌렸다. 그것도 유머러스하게.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나 김민식 PD의 '해봤니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두 책 모두 재밌고 거부감이 없다. 지은이는 주류지만 비주류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생각에 매력을 느꼈다. 만약 입사 1년 차에 이런 책을 읽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게 분명하다.
둘째. 성장 욕구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꾼다. 발전된 자아를 원한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싶고 승진도 하고 회사 안/밖에서 인정받고 싶지만 현실과 이상 간 간극이 존재한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나는 간만 보는 타입이었다. 속으로는 잘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이것저것 시도 했지만 꾸준하지 못했다. 발전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3년 정도 비슷한 고민을 하던 와중에 신정철 작가의 '메모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변화가 시작되었다. '컨텐츠 소비자에서 머물지 말고, 생산자가 돼라.' 방법은 '책을 읽고 메모하는 습관에서 시작한다'는 다소 자기계발서 풍의 메시지 었지만, 정처 없이 떠돌고 있던 불안 심리를 해소시켜 주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 있었다. 그 후로 조금씩 책과 메모를 습관화했고, 독서와 글쓰기가 주는 매력에 빠졌다. 주어진 삶 안에서 조금이라도 '의미'있는 삶을 살려고 바둥댔던 마음이 적절한 때에 책을 만나 발화될 수 있었다.
셋째는 좋은 책을 추천하는 사람을 만났다.
원래부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가정에서 책을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해당하지 않는다.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찾아 읽으니까. 마지막 세 번째 요소는 만약 주변에 책을 읽히고 싶은 사람(남편, 아내, 자녀, 팀원, 후배 등)이 있는 분에게 유용한 방법이다.
첫 번째 요소에서 말한 재미있는 책을 어떻게 찾았을까? 나는 아내의 추천을 받았다. 이미 풍부한 독서량을 자랑하는 아내는 읽고 괜찮은 책을 추천하곤 했다. 내가 흥미를 느낄 만한 부분을 조잘조잘 설명하는 방법이었다.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꾸준히 책을 읽었지만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 중 그녀가 조잘거렸던 책에 조금씩 손이 가기 시작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책이었다면 표지에서부터 거부감이 일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엄선해서 추천한 책이기에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요약하자면, 책없남/녀가 책못남/녀가 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 + 관심사(흥미) + 관심사와 관련된 책(을 추천하는 사람) 삼 박자가 맞아야 한다.
앙팡이가 아내의 피를 물려받아 어렸을 때부터 책을 스스로 읽으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책 읽기를 싫어한다. 날 닮았다면 100% 싫어하겠지. 입체 초음파에선 나와 너무 똑같이 생겨 놀랐지만 그래도 이제 아빠는 책못남이 되었으니 걱정은 덜었다.
벌써부터 아빠 뜻대로 아이를 키우려고 싶어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