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말씀이 굉장히 많으시고 자기애와 자존감이 무척 높다. 피난 시절,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아 대학교와 직장을 다니셨지만 결혼과 동시에 모든 것을 포기하셨다. 2남 2녀를 키우면서 자녀들을 모두 대학에 보냈고 본인의 재능을 살리고자 교회에서 일어 선생님을 도맡아 하셨다. 지칠 줄 모르는 부지런함으로 지금까지도 정정한 삶을 살고 계신다. 내 학창 시절, 때론 엄마보다 더 많이 하던 잔소리에 '옛날 사람'으로만 치부했던 할머니에게서 최근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이 정도로 깨어 계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간간히 오가는 대화를 통해 할머니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됐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와 우리 부모님은 상암에, 할머니는 분당에 거주한다. 대부분 가족 모임은 분당에서 하지만, 종종 상암으로 할머니를 초대도 한다. 이런 경우, 보통은 자녀들이 모시러 가는 게 일반적인데, 할머니는 결사코 사양하신다. 90을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상암까지 '직접' 오신다. 두 다리가 멀쩡한데 왜 굳이 기름값을 낭비하냐며 나무라신다. 건강이 뒷받쳐 주니 가능한 일이기에 감사한 일이면서도 손자와 손자며느리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또한 주말에 가겠다고 전화를 할 때면 핸드폰 구멍에서 바람이 나올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말씀하신다. 임신한 애 고생시키지 말라고. 거동도 불편할 텐데 장거리 운전은 하는 게 아니라고 하신다. 마음속으로는 그럼에도 빨리 오라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끝까지 한사코 오지 말라고 말리신다. 분당에 있는 다른 가족들이 잘 챙겨주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오히려 본인보다 임신한 아내나 잘 챙겨주라고 하신다. 무거운 짐은 절대 들게 하지 말고, 스트레스 쌓이지 않게 말을 잘 들으란다. 내 할머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손자며느리를 위해주신다. 무거운 몸을 끌고 만원 버스에서 출퇴근하는 고생까지, 시어머니도 잘 모르는 부분까지 관심에 두신다.
이렇게 신세대(?) 할머니지만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들을 지극히 선호하는 '남'아선호 사상이다.
당신의 아들, 딸 모두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게 잘 컸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아들을 챙기는지 알기 어렵다. 모두를 사랑하지만, 유독 아들(외삼촌) 이야기와 아들 손주 소식이 나오면 슬그머니 세어 나오는 미소를 속이시지 못한다. 심지어 외가 식구들 모두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고 이해한다.
사촌 누나가 이란성쌍둥이를 낳았고 할머니가 아들 손주만 편애하는 발언을 하시길래, 왜 그런지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근거 있는 답변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너도 이 나이 먹고 지금까지 살아봐라!'라는 철벽 논리에 대화에 진전이 생길 수 없음을 깨닫고 입을 닫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사랑스러운 것은 아내에게 미안 하신지 대놓고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야기가 끝날 때쯤 '그런데 아들 하나는.... ' 하시며 뒤를 돌아보고 말을 흐리신다. 배려심 킹왕짱 할머니.
아들 러버는 할머니뿐만 아니라 장모님도 마찬가지다. 아들과 딸 중 어떤 게 좋을지 물어보면, 환하게 웃으시면서 쑥스러워하신다. '뭘 그런 걸 물어봐 김서방~ 둘 다 좋지~' 하시지만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뒤를 돌아보신다. 희미하게 들리는 단어, '들' 이 갈 곳을 잃고 공중에 떠 있다.
웃긴 건, 정작 우리 엄마는 예외라는 점이다.
이것에 대해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명확한 건 아들이건 딸이건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선호가 뚜렷하지 않은 것은 나와 누나를 대하는 모습 속에서 유추할 수 있다. 엄마가 나를 낳고 시할아버지한테 인정을 받았다는 할머니의 라떼 스토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전부였다.
아내 표현을 빌리자면 엄마는 쿨내가 진동한다.(쿨내 나는 엄마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 엄마를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굳이'로 정의할 수 있다. 별 일 없으면 '굳이' 전화 안 해도 된다. 아가야 '굳이' 올 필요 없다. '굳이' 밥 차리지 말고 시켜 먹자 등등. 이런 st. 의 엄마는 누나와 나 사이에 편차를 두지 않았고 '굳이' 터치하지 않고 키웠다. 어디 가서 우리 딸이나 아들을 자랑(자랑할 게 없어서인가?)하는 일은 결코 들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다른 이들의 소식을 퍼 나르지도 않는다. 다른 이와 비교에서 오는 가정 싸움의 원인을 아예 차단했다는 점은 엄마의 가장 큰 강점으로 나는 생각한다. 여하튼, 이런 배경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아들, 딸에 대한 선호가 크지 않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 요즘은 '여'아선호 사상이 강하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큰 이유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의 에너지를 부모가 받아내지 못하는 거다. 가끔은 아들 낳기 두려워서 임신을 꺼린다는... 개인적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기도 했다. 얼마나 힘들길래 그러는 걸까 싶기도 하고, 아직 걸어본 길이 아니어서 속도 모르는 편한 발언일 수도 있다. 아무튼 확실한 건 임신을 계획하거나 성별 발표를 앞둔 예비 부모들은 이런 사소한 것들도 신경이 쓰이고, 성별에 따라 육아 선배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는 씁쓸한 사실이다.
대세인 딸 부모를 만난 경우,
자녀가 어느 정도 자란 육아 선배들은 딸의 - rrr 발음이 끝나기도 전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딸이 최고지, 딸만 있으면 돼, 이젠 부러울 게 없겠네' 등 누군가의 아들을 앞에 두고 딸을 치켜세운다. 그리고는 딸이 주는 장점을 줄줄 읊는다. 애교가 많고 키우기가 편하며 엄마가 육체적으로도 덜 힘들다, 반겨주는 건 딸 밖에 없다는 등... 온갖 칭찬 세례가 이어진다. 엄마와도 감정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우울하지도 않는단다. (아들도 아빠랑 감정이 통하.....할 때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그리고는 낳지도 않았는데 첫째가 딸이니 둘째도 가능하겠다며, 당사자도 모르는 가족계획을 쉽게 풀어놓는다.
반면 아들과 행복한 시간을 이겨 내고 있는 선배의 경우에는,
잘 지내냐는 인사가 무색하게 힘듦을 쏟아 낸다. 말을 안 듣는 것은 기본이고 뒤꿈치로 엄마 눈과 코를 쳐서 수술을 했다느니 같은 안타까운 소식들이 종종 들린다. 브롤스타즈(모바일 게임) 캐릭터를 빨리 얻어야 한다는 아들의 성화에 출퇴근 시간을 게임에 집중한 나머지 손에 굳은살이 배겼다는 팀원분의 말에는 행복감도 있지만 적잖은 피로감도 보인다. 이런 시각 때문일까. 느낌적인 느낌으로, 딸 아빠보다 아들 아빠들이 퇴근을 서두르니 않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장벽을 체험하기도 한다.
'딸바보'는 익숙하지만 '아들바보'는 생소한 키워드인 요즘-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성별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그다음을 떠올려 본다. 소형, 대형 주택이 흐름을 타는 것처럼 또 변화가 생길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 시대처럼 아들을 낳았다고 무작정 좋아하거나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시대는 안 왔으면 좋겠다.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성별에 따른 차별 없는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성숙한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오늘, 앙팡이가 귀엽고 귀한 공주님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바뀐 건 없지만 처음 우리를 찾아온 것만큼 똑같이 기뻤다. 퇴근하면 웃으면서 아빠에게 뛰어와 안기고,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주고, 아빠와 커플룩을 입고, 기념 사진을 남기고, 자전거 트레일러를 연결해 같이 한강에 놀러 나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