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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하 Jan 11. 2022

향기, 너란 녀석은...

너와 함께 향기롭게,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오랜 세월 가까이,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아, 내가 이래서 이 사람과 친하고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거구나, 하고.

예를 들면 목소리가 좋다거나, 타인에 대한 배려나 위로의 방식이 섬세하다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단단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어떤 사건을 통해, 혹은 그냥 문득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이다. 그럴 때면 그 대상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나와 친하게 지내주어) 고마운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나서 일 없이 실 없이 안부인사를 건네보기도 한다.


요즘 내 마음과 관심과 시간을 상당히 빼앗고 있는 ‘향기’라는 대상에 대해서도 그런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향기가 우리 뇌의 기억 메커니즘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부피와 무게를 거의 차지하지 않고서도 그 존재를 널리 각인시키고 영향을 퍼뜨리는 그 방향성과 휘발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을 때. 그리고 언어화가 정말 힘든 영역임을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은 궁리 끝에 큰 맘을 먹고 아로마 조향이라는 것에 도전을 시작해본 때가 지난해 초겨울. 여러 향을 하나씩 시향하면서 나의 주관적 느낌을 적는 ‘Olfactive description’은 쉽지 않았다. 버가못이나 라벤더, 레몬 같이 아는 향들은 그나마 ‘레몬에서 레몬향이 난다”라고라도 말할 수 있었지만, 이름도 생소한 에센스 오일이 발하는 낯설고 아무것도 연상되는 것이 없는 향기 앞에서 내가 가진 언어는 너무나 빈약한 것이었다. 내 안의 어떤 단어로도 치환을 시키지 못하는 곤경에 펜만 굴리다가 생각했다. 아, 이것이 바로 '근대  이성의 산물인 창백하고 밋밋한 언어로 번역이 불가한 풍요로운 감각 혹은 지각'의 경험일 수 있겠구나. 향기라는 것, 조향이라는 일이 내게 그리도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사태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수 있었겠다...


그렇게 시작했던 조향의 학습이 끝나고 지난 연말에 조향사 자격증 시험을 보았다. 나로선 만만치 않은 시험이었다. 고등학교 때 배웠음에 틀림없다는 유기화학은 전생에서 배웠나 싶었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낯선 향기들의 블라인드 테스트도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매혹이 꽤 커서 - 사랑의 대상에 대해 대체로 그러하듯 - 학습이 잘 되었었나 보다. 오늘 문자로 합격 소식이 날아온 걸 보면 (야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여기저기서 불려지던 시절이 있었다. 록 스피릿이 시원한 저음의 목소리는 지금 JTBC “싱어게인”에 나와도 기립박수를 받겠지 싶게 멋졌지만, 노래를 듣거나 심지어 부르면서도 “에이 ~ 설마”가 튀어나오곤 했었다. 어쩌다가 아주 드물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뿐인 것이고, 무엇보다 그 한 개체인 나 자신이 그의 강력한 반증일 것인데,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지? 툴툴거리며. 


이후로 많은 시간을 통과해 오면서 인간 존재와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꽤 바뀌긴 하였지만, 어떤 인식의 틀로도 인간이 통째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을 뿐. 그 순간들을 늘리려,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고분 고투하는 노력이 있을 뿐.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향기에 있다(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꽃의 아름다움에는 너무나 강력한 향기가 있으므로. 그렇다고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스스로 발향을 할 수는 없지만 향을 매개하는 매체가 될 수는 있으니까. 우리의 몸과 공간을 통해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품거나 전달할 수는 있으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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