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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하 Jan 02. 2022

그래서, 다시 새해다

"실패에는 '다시'가 있어야 한다"

다시, 새해다. 

'다시'를 붙인 까닭은 무엇보다 2022년 새해가 된다고 해서 떠오르는 '해'가 어제와 확연히 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걸 결코 모를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그 속에서 하나씩 늘려온 실패의 기억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시'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떤 실패들. 


새해의 To do list를 만들었다. 새해를 앞두고 유튭에 여러 차례 올라오는 '노션'이라는 노트앱의 영향이 컸다. 오래 써오던 에버노트를 바꾸고 싶었던 차에 마침 이게 딱이다 싶었으나, 막상 오래 쌓인 노트들을 이전하는 데는 실패했다. 개발사에 해결방안이 있는지 문의를 보냈더니 형식적인 짧은 답이 왔다. 아주 극소수에서만 실패(fail)를 하는데... 아, 내가 실패하는 그 '극소수'구나 라는 확인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에버노트와의 이별은 일단 보류가 되었지만 소득은 있다. 다른 용도 - 일정과 목표 다이어리로 써보기로 하였으므로.  


나는 목표지향형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감내해야 하는 고달픔은 나이 먹을수록 더더 배가될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린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타고난 성향이겠거니 하고 살아온 것이 하, 너무 오래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여느 새해처럼 여기저기서 날아온 새해 인사 중의 하나가 툭, 가슴에 안착했다. 오래전 잠시 머물렀던 먼 미국 땅에서 만났던 J양에게서 온 카톡 문자다.  

"하경 언니가 더 많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멋진 꿈을 꾸고 활짝 피어나길 응원하겠습니다..."


이 짧은 안부 인사는 피부를 통과해 들어오는 장파장의 자외선처럼 길고 은근하게 침투해와, 내 안 깊은 곳의 어느 지점을 건드린 모양이다. 긴 잠을 자고 2022년 둘째 날의 아침에 창문을 여는데 마음이 마구 흔들리면서 울컥한 것을 보면. 내가 그다지 '멋진 꿈'을 꾸어본 적이 없구나, 그래서 멋진 선택들도 못하고, 아쉬울 선택들을 놓치고 그랬겠구나, 그리고 어쩌면 그 뿌리에는 파란 많았던 어린 시절,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녹녹지 않은 상황들이 안겨준 열패감도 있었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콧날이 시큰해져 버린 것이다.  


뭐, 그런 자기 연민이 오래 간 건 아니다. 창문을 다시 닫고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하고 모닝커피를 내리며 킁킁거리며 커피 향을 맡고 나자 곧 진정될 정도만. 챙겨보는 "방구석 1열"을 보며 다시 낄낄거릴 정도까지만. 

그러다 이 프로가 끝나자 나오는 싱어게인 티저에서 한 문장이 여운을 남겼다.  "실패에는 '다시'가 있어야 한다"고라... 


아직도 어떤 일에 대한 실패는 있어도 실패한 인생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쪽이지만, 그래서 실패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그 뒤에 붙는 '다시'라는 말에 마음이 쏠렸다. 이래저래 늘어난 나이를 확인하고, 이젠 새롭게 달라지는 건 없다는 친구의 말에 동의를 하는 일이 살짝 쓸쓸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그게 "다시"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면 다른 뉘앙스가 될 수 있구나.... 


그래서, '다시' 멋진 꿈을 그려보기로 한다. 새로 시작한 노트앱 'notion"과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 이 브런치라는 일기장도 그 꿈을 따라가는데 괜찮은 도구가 되어줄 거라 믿으며. 언젠가는 이 '만세선인장'처럼 '만세'를 부를 날이 오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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