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라는 처방전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던, 평론가 이명원의 서평집이다.
“산다는 일이 때때로 팍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쓰린 마음에 소금이 뿌려져 그야말로 소금밭이 되는 일도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움큼의 투명한 소금이야말로 가혹한 비바람과 격렬한 태양 아래서 마술적으로 응결된 것, 아니 단련된 것. 사각형의 책들을 순례하면서, 나는 사는 일을 경쾌하게 긍정하는 연습을 했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질문을 거듭 던졌다...”
캬. 그 시절엔 이런 문장들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동네 사는 소설 쓰는 후배가 이 저자와 술을 마시고 있다며 나오라 전화했을 때 냉큼 책을 들고나가 사인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여기저기 줄이 쳐 있는 책 두 권에 사인을 해주던 저자는 “이런 책을 사는 사람도 있군요..”라고 말하면서도 표정이 꽤 밝았는데, 그때의 내 오두방정이면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바쁘고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리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바다 일정을 잡고서 이 제목이 생각났다. 오랜만의 바다,라고 하기엔 소박한 인천 앞바다이지만 그래도 바다니까 일에 치여 소금밭인 마음을 달래주겠지. 바다야말로 소금을 만들어내는 곳이니, 마음이 소금 밭일 땐 도서관보다 바다 아니겠어?
지난여름 내 마음의 염도를 낮춰준 건 속초 앞바다였다. 뭔 일에 치여 저 혼자 씩씩대다가 에어비앤비의 숙소 예약을 클릭해버렸고 그 즉각적인 효능-진정효과와 생기 충전 등-을 알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때에 비해 이번엔 증상이 좀 덜하니까. 그때가 독감이라면 이번엔 감기 정도이고, 또 때가 때인 만큼 집에서 가까운 영종도에서의 하루 자발적 자가격리를 해보기로 한다. 내 마음의 염도를 높이는 모든 것들로부터의 자가 격리다.
(지난여름의 속초. 다음 생애는 소설가가 되어 이런 곳에서 집필이란 걸 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해 주었던 숙소)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결제버튼을 누르고 나자 마음이 진정되어 까다로운 리플렛과 제품 매뉴얼 작업등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착한 영종도 바다는.. 매우 춥고 바람이 세서 다리까지 휘청거렸다. 콧바람 하나는 제대로 쐬고 갈 모양이다. 하여 일찍 들어와 창문 가득 들어오는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기다 보니 잠이 온다. 이 처방은 내 마음의 염도를 낮춰주고 나의 불면증도 진정시켜 주려나...
바다 앞에 있으니 마음의 소금 알갱이들이 바다로 흘러나가는 것 같은... 이런 걸 삼투압 현상이라고 했던가.. 기억 속을 헤매는데, 오래전 어떤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생살에 소금 뿌린 듯이 아파요” 엄살을 부렸던 내게 소금구이 삼겹살을 사준 선배들도 생각난다. 모두들 안녕하시겠지. 그중 너무 멀리 가신 S선배의 평안을... 마음 모아 기원한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그래야 내일, 잠들었던 침대 위에서 해 뜨는 광경을 보는 호사를 누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