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전환기
“생애전환기"는 “건강검진'과 연관검색어다. 만 40세, 만 66세가 신체가 큰 변화를 겪는 시기라 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항목을 추가해주기 때문이다. 만성질환 위험성이 증가하는 시기라 검사를 더 해준다는 좀 쓸쓸한 취지와는 살짝 거리가 있어 보이는 뉘앙스의 작명이라 생각하며 기억해두었는데 친구와 통화 중에 문득 이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요즘 생애전환기 비슷한 걸 겪고 있는 중이라...”
확실히 작금의 내 증세는 총체적 생애전환기라 할 만하다. 건강검진에서 나온 만성적인 위염과 너무 빨리 찾아온 골다공증 뿐 아니라, 지난날들이 시도 때도 없이 스쳐가며 회환을 남기곤 하는 심리적이고 비생산적인 증상이 가리키는 바가 그러하고, 좀 긍정적인 것으로는 오랫동안 꿈꿔오던 전업-업종전환의 싹을 틔워보려 파닥거리는 중에 있기 때문이다.
어젯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작업실을 계약했다는 말을 언니에게 했다가 언니와 형부로부터 길고 센 걱정과 회유와 설득의 말을 들었다. 매우 이른 나이에 부모를 여읜 남매의 장녀, 비혼을 선택한 데다 안정적인 삶을 위한 노력 같은 거에는 도무지 무관심해 보이는 철없는 동생을 둔 언니의 예상된 반응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좀 강도가 셌다. 아등바등 살아온 모든 삶의 시간들이 다 부정되는 느낌이었다. 가장 친밀한 가족이어서 가능한 강도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내 안에서 증폭되는 게 컸다. 내 문제였다. 전화를 끊고도 온갖 아쉬움과 변명과 반성의 말들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다녀 어느 때보다 길고 긴 밤을 보냈다. 다시 날아보려 파닥거리던 날개가 푹, 꺾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랴. 나는 다시 살아야 하고, 이제까지의 나의 우둔한 선택들은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고, 이 ‘생애전환기'에 나는 또 나의 내적 요구에 따라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므로.
오랜 세월 동생들에 대한 걱정이 한 짐인 언니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언니의 선택과 언니의 성취와 삶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많이 못 미치는 나의 오늘을, 이 생애전환기의 푸덕거림을 언니가 빨리 이해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어여 전화해 가벼운 목소리로 “그래, 그렇게 꼭 하고 싶다면 알겠어. 잘해봐.” 말해주기를.
또한 나의 '생애전환'이 무사히, 안착할 수 있기를.
* 가까운 여행지 숙소에서 발견하고 단숨에 읽었던 그림책. 단순한 선과 색채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여운이 깊어 돌아오자마자 주문을 해서 가지고 있는, 하이케 팔러/발레리오 비달리의 <100 인생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