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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하 Apr 21. 2022

대략 괜찮은 날들

It’s okay not to be fine sometimes…

"It’s okay not to be fine sometimes…"

오래전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주인공 메러디스 그레이가 읊조렸던 내레이션으로 기억한다.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일이 마구 꼬이거나 무언가 뜻하지 않게 저지른 행동이나 초래한 상황에 대해 자괴감이 드는 씬이었을 것이다. 시크한  멜랑꼴리 하게 들리던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는 길에 이 문장이 머릿속에 소환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한 이틀 정도의 시간 동안 흘린 여러 투정과 엄살들이 스윽 스쳐 가니 저 문장이 떠나지 않고 빠작거렸다. 그리고 대략 그 시작이었던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삭제하려다 살짝 놀랐다. 이런 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겼다. 정말로 괜찮은 것만 같아서.


옛 직장 동료를 오랜만에 만났다. 못 본 시간이 정말 한 세월이건만,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려운 시절 함께 야근하고 날밤도 새다가 내가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박차고 나와 거친 세상을 헤매는 동안, 우직하게 선량하고 성실했던 그는 이제 꽤 건실해진 회사의 어엿한 대표가 되어 있었다. 그의 노력과 열정과 성정으로 보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장기간 늘어지던 고된 프로젝트 때문에 여자 친구를 만나지 못하다 이별 통보를 받았던 어느 날의 어두웠던 그의 얼굴과, 드디어 그 프로젝트에서 해방되던 날 다시 여자 친구 전화를 받고는 조명을 받은 듯 환해지던 그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래, 뒤죽박죽 말도 안 되는 허접한 사람들이 승승장구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폭력을 휘두르는 세상이지만, 성실한 노력의 대가로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지. 그래서 우리, 아직은 괜찮은 건지도 몰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그를 포함한 몇몇 최측근에게 살짝 흘리고 힘찬! 응원을 받았다. 그 응원의 말들과 고마운 마음을 깊이 오래오래 간직하기로 한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도... 종종 안 괜찮은 나도, 대략적으로는 정말 괜찮은 거 같기도 하다.


* 성공한 박대표가 선물을 골라보랬는데 뭘 사달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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