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반려 취미 탐색기 #1
한눈에 알아봤다. 설렁설렁 보던 드라마 <남자친구> 속에서, 무려 박보검의 가슴팍 위에서도 당당히 빛나던 금속의 몸체.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많지 않은 월급을 탈탈 털어 처음 장만했었던 수동 필름 카메라 니콘 FM2다.
이 녀석을 손에 넣고 나서야 나의 사진 찍기는 시작되었지만, 사실 내 사진 생활의 시작, 혹은 발단은 나의 엄마였다.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탓에 영원히 젊은, 아름다웠던 엄마의 사진들은 어떤 불행하고도 공교로운 사건으로 인해 모두 태워지고 유실되어버렸고, 엄마의 부재가 너무 아팠던 11살 아이의 결핍과 그리움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매혹으로 무럭무럭 자라나, 살면서 가장 오래 내 곁을 지켜준 취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사진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흑백 필름인 티맥스와 트라이엑스의 입자가 어떻게 다른 지, 코닥 엑타크롬은 어떤 색감인지, 니콘과 캐논과 펜탁스의 렌즈들은 얼마나 다른 이미지들을 내어 놓는지, 붉은빛만이 어슴푸레한 암실 안, 정착액이 담긴 트레이 속에서 이미지의 상이 서서히 떠오를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등...
솔직히 내게는 버거운 취미였다. 다소 열악한 신체적 조건에 비해 카메라는 무거웠고, 가난한 경제적 조건에서는 카메라와 렌즈뿐 아니라 필름도 비쌌다. 그럼에도 손을 놓고 싶지 않아서, 혹은 그 버거움을 상쇄시켜 보고자 몇몇 월간지에서 사진 객원 기자로 일하며 많지 않은 돈을 벌기도 하였다. 몸은 고달팠고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문득문득, 아무렇지 않게도 행복하였다.
좁은 옥탑방 주방 공간에 기어이 암실을 만들고 나자, 달(moon)이라는 게 얼마나 밝은 빛을 내는 지를 알게 되었다. 달이 잘 보이지 않는 날을 기다려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꼼꼼히 창문을 가려도 은은한 달빛은 작은 방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기 일쑤였다. 스며드는 달빛과 실랑이를 벌이며, 현상과 정착 과정의 온도와 시간 같은 것들과 씨름을 벌이다 보면 창 밖이 훤히 밝아왔다. 다시 후다닥 셔터를 누르게 했던, 그 새벽을 물들이던 찬란한 빛의 풍경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열병과도 같았던 그 욕망은 (징하게도!) 좀 더 나를 몰아붙여, 두세 번쯤의 작은 그룹전을 하였고 대학원에도 발을 들여놓게 하였다. 내가 처한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현실적 여건들이 자, 여기까지야, 하고 한계를 알게 해준 그곳에서 나는 마침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의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는 지를. 사진은 무엇보다 한 때 거기 존재했으나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어떤 대상의 가슴 아픈 부재증명*인 것을.
영 재미는 없어 보이는 제목을 단 석사 논문(내용은 괜찮은데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건 건조한 제목 때문이라고 믿고 싶은)에, 이 모든 지경의 시작인 엄마에게 스페셜 땡스를 표하고 싶었던 나는, 주절주절 써넣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아주 작고 희미한 네 글자를 이렇게 적어 넣었다.
"엄마에게"
* 롤랑 바르트, <밝은 방> 참조